[인천시론] 그리운 고향, 그리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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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이날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단과 종전 선언, 종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전환 등 추진키로 하고 1차적으로 동해선 및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로 했다.

 

이는 지난해 정부에서 밝힌 ‘H 경제벨트’로도 불리는 환서해권, 환동해권, DMZ를 가로지르는 접경지역 3대 경협으로도 볼 수 있는데 특히 환서해권은 교통, 물류, 산업 벨트로 인천과 직결된다. 실제 2000년대 초 인천-남포항 해상운송이 있었고 지리적으로 북과 가까운 인천이 남북경협의 중심지로 떠오를 수 있기에 남북정상회담 이후 지역사회가 거는 기대가 크다.

 

하지만, 경제적 효과도 효과지만 남북관계 개선이 더 시급한 이유가 또 있다. 바로 이산가족이다. 대부분 80세 이상 고령으로 인천지역만 하더라도 매년 200여 명 가까이 줄고 있다.

 

통일부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2014년엔 5천900명, 2015년엔 5천599명, 2016년엔 5천330명, 2017년엔 5천84명, 현재는 4천794명밖에 남지 않았다. 2005년 8천442명과 비교해볼 때 벌써 절반이 넘는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에게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적십자는 이산가족 상봉 외에도 매년 명절에 고령 이산가족을 선정해 위로방문을 하고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고향의 기억과 가족과 헤어진 마지막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누구보다 애타는 분이 있는데 올해로 93세, 이병호 할아버지다. 지금도 자나깨나 마지막 순간을 잊지 못하고 있다. 헤어질 당시, 4살된 딸이 “아빠”하고 외치던 게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고 한다. 그게 마지막 딸의 모습이었고 그게 마지막이 될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그렇게 65년이 지났다. 하지만 그간 이산가족 상봉행사가 열리면 추첨을 통해 이산가족 상봉자가 선정되다보니 매번 상봉명단에 포함되지 못했다. 그래서 본인까지 차례가 오겠느냐는 말을 반복했다. 그래도 죽기 전에 딸을 만나길 소망했다.

 

과거 300~400명씩 만나는 이산가족 상봉행사로는 피맺힌 응어리를 풀 수 없다. 한 매체를 통해 이산가족 생존자 80%가 금강산 외 다른 면회소가 필요하다고 조사된 것도 맥을 같이한다.

 

지금보다는 더 많은 기회가 있어야 한다. 피를 나눈 혈육간 만남엔 이념도 정치도 개입할 수 없고 인도주의만이 적용돼야 한다. 문화예술, 학술교류, 경제협력 등 중요한 사업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통한의 생이별을 더 이상 바라만 봐선 안 된다.

 

회담결과 공동발표 후 만찬이 생중계됐다. 이내 만찬장에 ‘고향의 봄’이 울려 퍼졌다. 노래 가사 말처럼 이산가족에게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었고 냇가에 수양버들이 춤추는 동네였고 그 속에서 놀던 동네였다. 그리고 그 고향에 부모, 형제가 있다.

 

이들에게 고향이 갖는 의미는 다르다. 남북관계 개선 이후 가져올 경제적 효과로 어느새 이산가족에 대한 관심은 예전만 못한 것 같다. 하루빨리 이산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리길 희망한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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