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정치과잉시대의 소확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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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뜨면 북미정상회담, 드루킹 댓글조작, 대한항공 총수일가의 패악질, 네이버 뉴스 갑질장사 등으로 어지럽다. 원래 세상은 혼란하고 시끄럽다고는 하나 우리는 정도가 지나치다. 특히 정치과잉이다.

 

외국에 한 열흘 정도 나갔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신문을 보면 누구 구속, 몇 명 사망으로 도배돼 있다. 한국에 10여 년 살다 자기 나라로 돌아간 나의 일본인 지인은 심심한 일본이 지겨워 미칠 지경이었다고 한다.

 

시끄럽고 거칠고 지저분하고 유도리(원어는 유토리: 여유라는 뜻이지만 약간의 융통성 내지 얼렁뚱땅) 있는 우리나라가 너무 그리웠던 것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좋게 해석하면 역동적인 나라로 들린다. 해방 이후 70여 년 동안 전 세계에 유례없는 비약적인 압축성장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독립, 분단, 전쟁, 기근, 독재, 민주화를 거치며 우리 역사의 가장 자랑스런 시기를 보냈다. 아직도 이념, 양극화, 실업, 저출산, 고령화, 남북문제 등 여러 어려운 일이 있으나 잘 되리라 믿고 싶다. ‘역사책에서 행복했던 시절은 백지로 돼 있다’는 말이 있다. 없다는 뜻이다. 세종대왕 때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재위 중 굶주림으로 없어진 가구가 2천567호나 됐으니 굶어 죽은 백성은 만 명도 넘었다.

 

지금 우리는 어디쯤에 와 있고 어디로 가야할지 알면서도 방법론에 있어서 너무 차이가 난다. 해방 직후 좌우 이념대립은 저리 가라다. 서로 나만 정의(正義)이고 선(善)이라고 하니 너무 피곤할 수밖에 없다.

 

어려운 말을 많이 하는 노자(老子)가 ‘무위지치(無爲之治)’란 말을 했다. 쉽게 말하면 최고의 정치는 지도자가 누군지 모를 정도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잘 다스려지는 것을 말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지금에 맞춰 해석해 보면 지도자는 ‘내가 여기 있음을 알아 달라’고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지도자는 사람을 발굴하고 일을 맡기고 평가해서 상벌권을 행사하는 사람이다. 분열된 민심을 통합하고 반대하는 사람과도 협치하고 포용해야 한다.

 

최근 소확행(小確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말이 유행이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처음 썼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하얀 면내의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쓸 때의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을 보는 것이 소확행이고 나의 장모님은 성경을 또박또박 필사하는 게 소확행이고, 어머님은 점심을 누구와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는 것이 소확행이다.

 

적정한 가격에 비교적 한가한 시간대에 마음에 드는 사람과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행복한 게 없다고 한다. 지도자는 국민의 소확행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국가, 민족, 통일, 양극화 등 거창한 구호도 중요하다. 하지만 지나보면 다 부질없는 게 많다. 정치과잉에 매몰되면 개인의 행복은 이미 멀리 가버린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저마다 기적을 보여줄 것처럼 난리이나 기대를 안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국민의 작은 행복을 책임져 줄 사람이 그립다. 너무 설치지 않으면서.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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