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내달 1일부터 시행하려는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6개월간 계도 기간을 두고 처벌도 미루기로 했다. 중소ㆍ중견기업은 물론, 영세 소상공인까지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제까지만 해도 기업ㆍ공장 등 근로 현장은 환란에 빠져 있었다.
늦은 감은 있지만 기업인들의 호소에 당ㆍ정ㆍ청이 귀 기울였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다. 그래도 정책 시행 열흘을 남긴 시점에서 이 같이 결정했다는 점에서는 아쉬움이 많다. 정부도 할 말은 있겠지만 국민을 대상으로 정책 실험을 해서 아니면 말고 식이 됐다. 무책임의 극치다. 당장 급한 불을 껐으나 근로현장에서의 불씨는 여전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연간 평균 노동시간은 멕시코에 이어 2번째로 많다. 35개 회원국 평균 1천764시간과 비교해 본다면 무려 305시간이나 길다. 따라서 근로시간 단축은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소통이 부족했다. 정부 의도대로 근로시간 단축 정책에 근로자들이 환영할 것 같았지만 현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반증한다. 중소기업이나 일용직 근로자의 경우, 근로시간 단축이 오히려 생계를 위협한다고 항변했다.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의 연착륙을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한 이유다. 독일 자동차 회사 폴크스바겐은 2000년대 초반 직원 복지를 늘리고자 근로시간을 줄였다. 결과는 심각한 경영난에 처했을 뿐이다. 당시 해외 공장 이전까지 준비했던 폴크스바겐은 노조 합의로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했다. 프랑스도 여가를 늘렸다가 경제 성장에 발목을 잡힌 사례다. 지난 1990년대 후반 주 39시간 근무도 버겁다며 35시간으로 단축하는 정책을 펼쳤으나 일자리 창출 효과는 미미하고 기업의 인건비 부담만 증가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근로시간 단축뿐만 아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취업은 하늘의 별 따기다. ‘일자리 정부’에서 오히려 일자리가 더 빨리 사라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 가운데 소득주도 성장만 앞서가고 규제 완화 등 혁신성장이 뒤처진 결과다. 통계청이 발표(15일)한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가 2천706만 4천 명이다.
지난해 5월보다 7만 2천 명이 늘어났다. 이는 지난 2010년 1월 1만 명이 줄어든 이후 8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전체 실업률도 4.0%로 5월 기준으로 2000년 4.1%를 기록한 이후 18년 만에 가장 높았다. 여기에 청년(15∼29세) 실업률도 10%대에 그치면서 관련 통계작성이 시작된 1999년 이후 최고 수준이다.
취업자 증가 폭은 지난 2월부터 석 달 연속 10만 명대에 머물다 급기야 지난달에 10만 명 선 아래로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2008년 9월부터 2010년 2월까지 10만 명대 안팎에 머물거나 줄어든 이후 처음 겪는 일이다. 지난 1월 최저임금 16.4% 인상을 앞두고 작년 말부터 줄어들기 시작한 도소매ㆍ숙박음식업 취업자는 지난달에도 전년 같은 달보다 10만 1천 명이나 감소했다. 제조업 취업자도 7만 9천 명 줄어들며 두 달 연속 감소했다.
일부 기업들은 최저임금 영향으로 임시ㆍ일용직의 일자리를 줄이는가 하면 각종 규제와 노동비용 상승으로 인해 해외 이전을 추진하거나 고려하고 있다. 고용부가 실태조사를 해서 연말까지 개선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정책을 시행할 때는 부작용에 대해서 신중하고 깊이 있게 검토해야 한다. 국민을 위한 좋은 정책이라도 당사자인 국민이 받을 사회적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 정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때론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김창학 경제부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