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기존의 3개 언론사를 통합하여 경기신문으로 창간되고 1982년에 경기인천을 커버하는 신문사로 개칭한 경인일보와 함께 4개 지방 신문사는 지방언론 경쟁시대를 맞이하였다. 86아시안게임에 이은 88올림픽은 지방언론을 활성화하는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1988년 7월4일에 7급 공무원으로 문화공보담당관실(대변인실)에 발령을 받았다. 전임자는 경인일보 ‘1도1사’의 체제에서 일했고 발령 후 며칠간은 단순한 업무로 생각하고 자료를 정리하여 기자실에 전했다. 그리고 오후에 자료로 보낸 도정업무 내용과 전화로 불러준 ‘가십(gossip)’ 기사가 활자로 보도되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데 발령받고 서류 보따리를 풀기도 전인 7월에 기호일보와 인천일보, 8월에 경기일보가 창간했다. 숫자도 멋지게 1988년 8월8일에 창간된 경기일보 출입기자 두 분을 맞았다. 기존의 경인일보와 함께 지방언론 4개사의 ‘전성시대’가 시작된다.
특히 경인일보 S차장과 경기일보 G기자가 연출한 기사경쟁(지방과장 테이블 유리 파손사건)은 공직사회의 수범사례가 되었다. 당시 우리들(공무원)은 치열한 언론사 간 競爭(경쟁)과 特種(특종)과 낙종의 외나무다리를 오가는 언론 생태계 기자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언론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은 깊어갔다.
두 분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광역, 기초자치단체장 취임식은 축소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출발을 위한 취임식을 준비하면 곧바로 언론을 통해 도민에게 전해진다. 그래서 독자들은 이미 단체장들의 ‘의미 있는’ 취임식이 축소, 취소되었지만 지향하는 바 그 콘셉트를 알고 이해한다. 언론의 역할과 기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제 지방언론 전성시대 30년을 맞았다. 1988년~2018년. 인터넷을 활용한 신문과 방송이 활성화되었다. 지방지 기자가 취재한 기사가 TV방송에 나온다. 1977년~2017년 공직 40년 중 11년6개월(138개월)을 공보실에서 일했다. 그리고 2018년 7월에 언론의 중요성을 거듭 확인했다. 언론을 어려워하거나 기사를 탓하는 공무원에게 告(고)한다. 言論(언론)은 우리(공무원)의 友軍(우군)이고 행정의 親舊(친구)다. 그리고 先言後公(선언후공)이다.
이강석 경기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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