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민주주의의 유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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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전 뉴욕 브루클린에 간 적이 있었다. 아는 칼럼니스트의 집에 며칠을 묵었는데, 집안의 구조나 샤워 시설 등이 상당히 오래된 느낌이었다. 얼마나 된 집이냐고 물었을 때, 150년쯤 되었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집뿐 아니라 그 블록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이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단독 주택들이었다.

 

그 지역은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하기도 전에 건설되었지만, 현대에도 자신의 기능을 잘하고 있었다. 오랜 기간 꾸준히 유지비를 들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건축물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도 유지비가 든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핵심인 선거와 언론만 생각해 보더라도, 상당한 사회적·경제적 비용이 소요된다.

 

우리는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내고 전화를 하며 메시지를 보내면서 비용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공공 커뮤니케이션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는 것을 간과하기 쉬운데, 대량으로 메일을 보내는 것, 대량으로 카톡을 보내는 것만 해도 상당한 비용이 든다. 서비스에 따라 다르지만, 10만 명에게 한 번 메시지를 보내는 데 백만 원 내외가 들 수도 있다. 언론 보도를 위한 홍보 활동 또는 광고 역시 비용이 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보 공유의 비용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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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하다. 주인이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판단에 필요한 정보가 기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숙의 민주주의의 한 형태인 공론화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물론 공론화에 대해 여러 가지 비판적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500명 내외의 인원이 시민참여단으로 작은 것 아니냐는 것부터, 일반인들이 공부와 토론, 숙의를 한다고 해서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겠느냐는 비판 등등.

 

민주주의가 완벽한 제도가 아닌 것처럼, 공론화 역시 완벽한 제도가 아니다. 또한 민주주의에 상당한 유지비가 드는 것처럼, 공론화를 함에 있어서도 상당한 예산이 들어간다. 물론 민주주의든 공론화든 무작정 많은 돈을 쓸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많은 집단과 조직들이 해결자로 힘을 모으느냐, 대결자로 서로 싸우느냐에 따라서 우리 사회의 모습은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민주주의의 유지비를 적절한 수준으로 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한 시기이다.

 

전형준 단국대학교 분쟁해결연구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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