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좋은 말 모음집’이라는 책도 나왔다. 읽다 보면 말은 다 맞는데 책을 덮으면 잘 기억나지 않고 지루하다. 영양 과잉이라 할까….
사랑처럼 좋은 글, 착한 말도 가끔은 지겨워질 때가 있다. 사실 이런 책들에 나오는 내용은 실천하기 어렵다. ‘참고 기다려라’, ‘희망을 가져라’, ‘고통을 즐거움으로 바꿀 때 행복이 찾아온다’ 등 뻔한 소리가 대부분이다 보니 싫증 나는 게 당연하다.
위선적이고 허무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은 ‘활자 이탈’의 시대이니 그런 책을 읽는 사람도 드물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아무리 봐주려 해도 교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좋은 말은커녕 자기 멋대로 말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고, 가장 감명 깊었던 책이 자기가 쓴 ‘거래의 기술’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열광하는 지지자들이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 터무니없는 말을 남발하는데 이상한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을 트럼프가 대신 해주고 있어서다. 인간은 성선설보다는 ‘성 왔다갔다설’에 더 가깝다.
우리는 ‘노력하면 성공한다’거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니 ‘정의는 승리한다’는 등의 말을 자주 한다. 그런데 살다 보면 이런 말들이 별로 맞지 않는다.
역사 바로 세우기, 공정한 사회, 정의로운 경제, 현인(賢人) 공론조사, 사람이 먼저다, 경제공동체 등 역대 정권은 좋은 말로 국민을 현혹시켰다. 구호 자체에 함몰돼 원래 의도는 제대로 발휘도 못 하고서 말이다.
최근 청와대 대변인이 리비아에서 납치된 우리 국민에 대한 논평에서 ‘그가 타들어 가는 목마름을 몇 모금의 물로 축이는 모습을 봤다’는 어설픈 문학적 표현을 보면서 감동보다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좋은 글, 착한 말들의 남용은 인간들로 하여금 희망보다는 실망을, 현실보다는 허무한 상상의 구렁텅이에 빠트릴 위험이 있다.
중국의 사상가 양주(楊朱)는 ‘내 몸의 털 하나를 뽑아 온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수호전(水滸傳)을 보면 송강을 비롯한 양산박 108명의 호걸이 정부의 학정에 대들다 마지막에 갑자기 정부와 타협해 벼슬을 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때부터는 보기가 싫다. 착한 글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좋은 글, 착한 말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세상은 선과 악으로 나눌 수도 없고 세상사를 한칼에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복잡하다. 차라리 솔직한 말과 글이 도움된다.
일본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는 자신의 대머리를 보고 ‘머리카락이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같은 말도 이렇게 재밌게 말할 수 있는데 너무 정의감 있게 심각하게 연극 대사처럼 안 했으면 좋겠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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