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재난심리상담, 고통 완화하는 심리적 응급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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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이 밀집한 인천에서는 올해만 해도 중대형 화재 4건이 발생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사고는 8월21일 남동공단에서 발생한 화재다. 아직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화마는 순식간에 세일전자 및 협력업체 소속 9명의 사망자와 6명의 부상자라는 안타까운 인명피해를 낳았다.

 

인천적십자사는 재난발생 직후 합동 장례를 준비하는 유가족을 찾아 담요와 세면도구가 포함된 응급구호품을 전달하고, 재난심리전문가를 파견해 입원중인 환자와 충격을 받은 가족들의 심리상담을 했다.

 

화재 직후 폐쇄된 세일전자 1공장의 근로자들은 대부분 화재장면을 목격했거나 탈출한 직·간접 재난피해자들이라 그들 중 일부는 포털사이트에 “화재 장면이 떠올라 잠을 잘 수가 없다”, “죄책감으로 너무 괴롭다” 등의 심경을 표현하기도 했다.

 

다행히 사고 1주일 만에 적십자사는 근로자 전원에게 심리 상담을 권유할 수 있었고 그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회사에서 마련해 준 상담실에서 1:1 개별 심리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개별 상담 내용은 비밀로 유지되므로 구체적 사연은 공개할 수 없으나 대체로 사고로 숨진 동료에 대한 죄책감,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안타까움 등을 표현하며 마음 아파했다.

 

또 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모든 유가족에게 심리상담을 안내해 상담에 동의하는 분들에 대해서 상담을 진행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화재로 인한 직·간접 피해자 전원에 대한 모든 접촉과 초기 상담이 화재 발생 8일 만에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인천시와 가천대 길병원, 세일전자 측이 ‘피해자의 고통’과 ‘심리적 응급처치’에 대한 깊이 공감해 협력했기 때문이다. 적십자사를 포함한 관계 기관들의 피해자 중심의 상황 모니터링, 개입의 적기 판단, 전문상담가와 피해자의 연결고리 등을 위한 적극적인 공조의 결실인 셈이다.

2003년 2월18일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로부터 약 15년이 흘렀다. 2017년 피해자 실태 조사에 따르면, 당시 유가족 44가족 중 71%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참사 이후 지금까지도 지하철을 못 타고, 집안의 창문을 열어 놓고 지내야 할 정도로 후유증을 겪고 있으며, 스스로 고립된 상태로 지내는 등 많은 이들이 사실상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응답자의 78%는 고혈압, 뇌졸중, 심장질환 등 질병이나 음주로 신체적, 정신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놓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이들에게 사고 직후 ‘심리적 응급처치’인 심리 상담이 즉각적으로 이뤄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는 심리상담을 통해 재난피해자들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아물도록 도와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의 후유 장애를 예방하고, 평범한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돕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담당기관인 적십자뿐만 아니라, 시민들과 관계자들의 인식 개선, 기관 간 협력과 네트워크가 필수적이다.

우리 사회가 재난피해자 각자가 겪었던 끔찍한 불행에 대해서 개인적인 아픔이나 슬픔으로 방치하지 않고 공감하고 함께하는 공동체가 됐으면 한다.

 

이경호 대한적십자사 인천광역시지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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