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은 유죄 여부를 판단하고 형량을 결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드러난 증거만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실을 밝혀 판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명백한 오심이 아닌 한 법원을 비난할 수 없다. 하지만 양형의 문제는 다르다. 양형은 유죄가 결정된 사안에서 죄질, 피해정도, 전과 및 사회경력, 피해 회복정도, 동종 범죄에 대한 기존 판례 등을 종합하여 판단하는 것으로 법관의 고유한 권한이다.
최근 몇몇 판결에서 양형 판단이 과연 적절하게 이뤄졌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이 제기된다. 한 청년이 곰탕집에서 여성을 성추행해서 징역 6월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다. 청년이 실제 성추행을 했는지에 대한 진실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동종 전과는 물론이고 어떠한 전과도 없는 자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하는 것이 타당했느냐 묻는다면 필자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기습적으로 이뤄진 일회성 성추행에 대해서는 벌금형이 선고되는 것이 일반적임을 고려한다면 이는 재량권을 한참 넘은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다. 검사가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음에도, 굳이 이를 ‘올려치기’해서 법정구속까지 했다고 하니 더욱 그러하다.
또한 1억 원대 사기 혐의로 기소된 사건에서, 피고인이 피해변제 목적으로 8천만원을 공탁했음에도, 판결문에 1천950만원을 공탁한 것으로 기재하고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담당변호사가 강하게 항의했음에도 재판부는 “공탁금 8천만 원을 다 반영한 형량이고, 판결문은 오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피해금액이 상당 부분 회복된 경우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있음을 고려한다면, 본 사안의 경우 피해금액의 80% 상당의 금원이 회복됐음에도 실형을 선고한 것으로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3권 분립을 원칙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사법부는 유일하게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다.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 사법부가 판결에 대한 신뢰마저 받지 못한다면, 이는 사법부의 근간을 뿌리째 흔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국민참여재판을 전면적으로 실시하자거나, 고위법관에 대해서는 국민의 신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선출되지 않는 권력, 그렇기에 통제가 어려운 권력,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거래 파문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더이상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법에 무지한 국민이기에 엘리트 법관이 내린 판결에 따라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사법부의 권력 역시도 국민이 위임한 권력이기에 국민은 사법부의 판결을 비판할 권리가 있다.
그런 국민이 외치고 있다. “당신이 심판받기를 원하는 그 방법으로, 나를 심판해주기를…”
이승기 변호사(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