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대학생 도우려고 지원했는데… 생활비 대출 받아, 유흥비로 펑펑

쉽게 받을 수 있다는 허점 노려 여행·투자 등 다른 용도로 사용
장학재단 “제재하기 쉽지 않아”

경기도 소재 A대학교 4학년인 B씨(26ㆍ여)는 지난해 2학기와 올해 1학기 두 차례에 걸쳐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생활비 150만 원씩 총 300만 원을 대출받았다. 평소 부모님의 회사에서 학비를 지원해 주고, 용돈을 받아 생활하기에 금전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었던 B씨의 대출 사유는 다름 아닌 ‘해외여행’이었다. 그는 첫 번째 대출금으로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두 번째 대출금은 여행 경비로 이용했다.

 

또 다른 C대 3학년에 재학 중인 D씨(24)는 지난해 가상화폐 붐이 일자 투자 목적으로 장학재단 생활비 대출을 이용해 100만 원을 빌렸다. D씨는 “여행이나 취미생활의 드는 비용도 생활비라고 생각해 장학재단의 생활비 대출을 받는 친구들이 많은 편”이라며 “나중에 잘 갚기만 하면 문제가 될 건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D씨는 생활비 대출을 이용해 휴학한 뒤 여행비로 쓰고자 생활비 대출을 받는 대학 동기와 후배들이 여럿 있다고 귀띔했다.

 

이처럼 별다른 조건 없이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이용 가능한 한국장학재단의 ‘생활비 대출’이 일부 대학생들의 여행이나 유흥, 투자 등 변질된 목적에 악용되는 것으로 나타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15일 한국장학재단 등에 따르면 재단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숙식비와 교재구입비, 교통비 등에 구애받지 않고 학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난 2010년 저금리의 생활비 대출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일부 대학생들이 별다른 조건 없이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대출받을 수 있는 ‘낮은 문턱’으로 인해 손쉽게 대출 받은 뒤 제도 도입 취지와 어긋난 곳에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단의 생활비 대출은 고정 금리 2.2%로, 신용회복위원회가 운영하는 대학생 햇살론인 5%대보다 금리가 2.8%포인트 저렴하다. 특히 소득분위가 8분위 이하(본인이 속한 가구 월소득 903만 8천 원 이하)라면 대출이 가능해 사실상 고소득층이 아닌 웬만한 가구의 자녀는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난 2016년 실제 학교에 등록하지 않아도 등록 의사만 밝히면 생활비를 학기 시작 이전 방학 때 미리 지급해주는 ‘생활비 우선 대출’ 제도가 생기면서 생활비를 대출받은 후 휴학하는 등 악용하는 사례마저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장학재단 측은 생활비 대출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파악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재단 관계자는 “생활비 대출을 받고 휴학을 하면 ‘즉시 생활비 대출받은 금액을 상환하라’는 경고 메시지를 보내지만, 강제적으로 상환하게 하는 방법은 없다”며 “대출만 해줄 뿐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욱 의원(더불어민주당ㆍ분당을)은 “무분별하게 은행권 대출이 이뤄지는 것처럼 한국장학재단의 생활비 대출도 학생들이 제도 취지와 다르게 사용하고 있다”며 “대학생들이 빚더미에 앉지 않도록 금융당국의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학자금 외 대학생 대출 금액은 2014년 말 6천193억 원(3만 4천540건)에서 올해 7월 말 77.7% 증가한 1조 1천억 원(6만 8천215건)으로 집계됐다. 연체액도 덩달아 늘어나 같은 기간 21억 원에서 55억 원으로 161.9%나 증가했다.

권혁준ㆍ김해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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