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다우지수에 들었던 기업들이 그 영예를 누렸던 평균 기간은 29년 11개월에 불과하다. 중간에 잠시 탈락했던 시기가 있었지만, GE는 다우지수가 출범했던 1896년부터 굳건히 자리매김했다. 더욱이 1907년 이후로는 줄곧 다우지수를 지켜온 명실 공히 최장수 초우량기업이다.
GE는 사업 초기에 석권한 전구 및 가전제품 시장을 토대로, 세계대전을 거치며 항공, 무기 및 방위산업으로 사업부문을 무려 7배 확장하는 기회를 잡았다. 2000년 전후로 ‘세계 1위 아니면 2위’의 기치 아래 과감한 매각과 인수합병으로 몸집을 불려 복합기업으로 변신했다. 전 세계가 GE의 변화와 혁신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 행보는 ‘경영의 교과서’로 불렸다.
흔히 GE는 토머스 에디슨이 설립한 기업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에디슨이 배제되면서 지금의 GE가 탄생한다. 당시는 전기산업의 표준을 두고 교류와 직류가 맞붙은 ‘전류전쟁’이 한창이었다. 직류 진영은 왕(!)들의 연합이었다. 금융왕 JP모건의 자본이 발명왕 에디슨을 지원했다. 경쟁자는 교류를 개발한 풍운의 천재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였다.
에디슨은 개, 말, 코끼리를 교류로 감전시켜 죽이는 공개실험을 펼쳤다. 급기야 사형집행용 전기의자를 개발하는 데도 교류를 적용했다. 교류의 위험성을 부각시키는 비열한 비방마케팅을 벌인 것이다. 모건은 더욱 악랄했다. 주식시장에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막강한 자금력으로 테슬라를 압박해 결국 교류 특허권을 포기하게 한다. 갖은 흉계에도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의 전기시설에 교류가 채택되면서 전류전쟁은 일단락된다. 장거리 송전에도 전력 손실이 적은 교류의 경제성이 인정받은 결과였다.
그러나 특허권을 포기한 테슬라에게 돌아온 경제적 이득은 없었다. 패배한 에디슨은 과학기술자로서 자존심을 구겼고, 부실한 전기의자로 사람을 태워 죽였다는 오점까지 남겼다. 최후의 승자는 모건이다. 모건은 파산위기에 처한 ‘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을, 교류기술을 보유한 ‘톰슨-휴스턴 일렉트릭’을 합병해 회생시킨다. 이 과정에 에디슨을 회사에서 내쫓고, 회사 간판에서도 에디슨 이름을 지워 ‘제너럴 일렉트릭’만 남겼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GE는 창업기술자의 기업가정신보다 자본을 투자한 금융의 권력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었다. ‘안 하는 일이 없다’는 거대 복합기업의 위용 뒤에는, 주주의 입맛에 맞춘 ‘돈 되는 일은 다 한다’는 유전자가 도도히 작동하고 있었다. 사뭇, 주가부양과 배당을 목적 삼아 단기실적에 경도되었던 셈이다.
“주주가치 극대화를 전략으로 잘못 생각했었다. 주주가치는 성심껏 일한 노력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다”라는 회한은 이를 반증한다. 1981년부터 20년간 GE를 이끌었던 잭 웰치의 말이다. 그는 ‘경영의 신’이자 GE 주가를 40배로 끌어올린 ‘주주가치운동의 아버지’였다.
작금은 주주뿐 아니라 고객, 조직구성원, 협력사를 아우르는 이해관계자의 가치를 높일 새로운 철학이 절실한 때다. GE는 이번 달에 순혈주의 전통을 깨고 외부인사인 로렌스 컬프를 회장으로 전격 교체했다. 그가 새로운 가치와 돌파구를 제시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우형록 경기대 융합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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