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무항산 무항심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우리나라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전체 실업자 규모가 외환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1999년 이후 최대를 기록했다. 특히 한국경제를 떠받치는 40~50대 실업자가 급증하고 있는데 40대 고용상황은 전 산업부문에 걸쳐 지속적으로 좋지 않다고 한다. 50대도 숙박음식업, 자영업을 중심으로 고용상황이 악화하고 인구 대비 취업자 수를 뜻하는 고용률도 9개월째 내리막길이라고 한다.

몇 달 전 국가 통계를 담당하는 산업동향과장은 “전반적인 상황이 안 좋다”며 경기 하강국면 진입 가능성을 언급했다. 기획재정부도 ‘산업활동 동향 및 평가’ 보고서를 통해 “고용상황이 미흡한 가운데 미국·중국 통상분쟁, 미국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 등 위험 요인이 상존한다”고 분석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국내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지속적인 경기 침체로 올해 폐업하는 자영업자의 수가 100만 명에 달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과 논란 속에서 언론들도 “지난해 자영업 폐업률이 전년보다 10.2% 오른 87.9%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IMF 경제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 한파로 인한 가처분소득 감소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가계부채 증가와 자영업자의 몰락을 초래하고 있다. 실제 자영업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고통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한다. 게다가 연말을 앞두고 계속되는 물가 상승으로 인해 서민들은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야 하는 처지다.

상황이 이런데도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 참석차 5박 6일 일정으로 국외 순방에 나섰다. 지난달 21일 7박 9일간 유럽 순방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다. 그러나 유엔 제재 완화를 통해 비핵화를 촉진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순방 정치, 외교적 노력은 프랑스, 영국, 독일의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미국 역시 대북 제재 완화 요구를 일축하며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 평화 분위기 조성을 위한 문 대통령의 노력과 방향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국외 순방으로 인한 성과는 미미하고 국내 경제 상황은 점점 나빠지고 있다. 이제는 남북문제보다 민생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濟)나라 선왕(宣王)이 맹자(孟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맹자는 백성이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지내면 왕도(王道)의 길은 자연히 열리게 된다며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이라고 답했다. ‘무항산 무항심’, 즉 ‘항산이 없으면 항심도 없다’는 말로 생활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바른 마음을 지키기 어렵다는 뜻이다.

제나라를 40년간 부흥시킨 최고의 재상 관중(管仲)도 정치의 궁극적 목표는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창고가 가득 차야 예절을 안다”며 정치와 경제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주는 하늘이 내린 것으로 생각하던 시대에도 백성을 하늘로 생각하고 그들에게 얼마만큼 안정된 생활을 제공하느냐가 정치의 요체였던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경제상황이 녹록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고 일자리 정부를 자처했지만, 고용률, 실업률 등 고용 지표는 연일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남북 평화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생활 안정이 통치의 근본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이제는 경제로 눈을 돌려야 할 때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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