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그루밍 성폭력, 용서는 없다

그루밍(Grooming)은 마부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시켜 말끔하게 꾸민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하지만, 마부가 말을 돌보듯 상대를 길들여 성적 노예로 삼는다는 소위 ‘그루밍 성폭력’이 만연해지면서, 그루밍을 엄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인천의 한 교회에서 청년부 A목사가 2010년부터 올해 초까지 26명의 여성신도에게 그루밍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혐의로 피소되었다. 피해자들은 “사역자를 사랑이란 이름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도록 길들여졌다”며 폭로했다.

그루밍 성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의도적으로 친분을 쌓고 이를 이용해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종속시킨 후에 성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피해자는 피해를 보는 동안 이를 범죄행위로 인식하지 못하고 연인관계에서 벌어진 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에 신고율도 낮고, 막상 신고를 하여도 연인 사이의 성적 관계로 치부되는 일이 많다.

사법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해에는 아직 중학생인 연습생을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연예기획사 대표가 무죄 판결을 받아 논란이 됐다. 대법원은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와 이메일에서 수차례 사랑한다는 내용이 있음을 근거로 강제성이 없다고 판시했다. 어린 피해자가 연예계 데뷔의 열쇠를 가진 대표에게 길들고 그를 두려워한 나머지 사랑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쓸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철저히 배척되었다.

하지만, 최근 미투(#MeToo)운동의 큰 흐름 속에서 사법부 역시 위드유(#WithYou)를 선언하고 있다. 올해 4월 학생들에게 성희롱 발언을 해 해임된 대학교수 사건에서 “법원이 성희롱 관련 사건을 심리할 때는 사건의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며 사법부 스스로의 변화를 촉구하였다.

또한, 8명의 여신도를 대상으로 성폭행을 저지른 혐의로 기소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에게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한 것 역시 성인지 감수성이 반영된 판결의 연장선이라 할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은 사법부가 그루밍 성폭력을 적극적으로 인정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루밍을 성폭력으로 보기보다는 성매매로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그루밍의 피해자가 아이들인 경우, 아이들이 가해자에 의해 길들여지는 과정에서 받은 선물과 용돈이 성매매 대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해자는 아이들을 길들여 성관계를 하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 돈을 준 것인데 이를 법이 보호해 주고 있는 것이다.

결국, 위와 같은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법적인 노력이 중요하다. 현행법상 13세 미만의 아동에 대한 성범죄는 동의 여부와 상관없이 가해자를 처벌하지만, 13세 이상은 강제성이 입증되지 못하면 처벌이 어렵다. 어쩌면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끝없이 ‘성행위에 동의했는가’를 묻는 것 역시 위와 같은 이유 때문이다. 13세라는 기준은 OECD 회원국 중에서도 법적 보호 연령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사법부는 그루밍 성폭력을 단죄하고 있다. 이제 국회의 위드유(#WithYou)가 절실한 순간이다.

이승기 변호사(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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