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태대지ㆍ황무집꽃’란 말을 들어본 적 있는지? 우리 주변의 대표적인 자연재해 현상인 황사, 호우, 태풍, 대설, 지진ㆍ황사, 무더위, 집중호우, 꽃샘추위를 줄여 한꺼번에 지칭하는 말이다. 유수의 대기업 부설 경제연구원에서 이 말을 쓰면서 널리 알려졌는데, 지금 보아도 기발한 약어가 아닌가 싶다. 이런 현상들의 최근 발생 빈도가 과거에 비해 많이 늘어나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되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오늘의 화두라 할 수 있겠다.
지구의 자연재해 현상은 말 그대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지만, 최근 불거지는 문제의 본질은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가스가 지구의 평균 기온을 상승시켜 지구온난화를 일으키고 이 온난화는 지구상에 온갖 특이한 기상 또는 극한(extreme) 기상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상현상은 대체로 고(高)위험도를 지니고 사회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위험기상 현상이라는 표현으로도 자주 쓰인다. 21세기 들어 온난화라는 말이 과학적으로 당연한 사실로 입증되고 있고 그로 인해 받게 되는 영향이 세계적으로 경제적ㆍ사회적 핵심 이슈로 다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역대 기상 기록들을 경신하는 등 극한기상의 강도가 강해지고 빈도도 높아지고 있는 것은 재난 관리 측면에서 매우 우려할 일이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건강에 취약하듯이 극한기상으로 인한 피해 정도는 사회의 면역력에 해당하는 사회 인프라가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느냐에 좌우된다. 그 때문에 특히 경제적으로 빈곤하여 사회 안전망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지역이나 나라에서는 비슷한 강도의 극한기상에 대해서도 그에 따른 피해가 더욱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온난화가 진행 중인데 왜 겨울이 과거보다 추워지기도 하고 위험기상이 빈발해지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겨울 추위는 북극에 갇혀 있는 차가운 공기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느슨해진 제트기류 때문에 중위도까지 내려오는 경우가 있다는 설명을 들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지구온난화에 포함돼 있는 통계적 의미는 온난화라는 글자 그대로의 뜻 이상으로 복잡한 양상을 띠는데, 평균 기온은 서서히 상승하되 그 변동폭이 과거보다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즉, 지구온난화로 말미암아 지구의 기후시스템이 크게 흔들리게 되면 기온의 경우 더운 날의 수도 더 많아지는 한편 추운 날 수도 더 많아지는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여름에는 폭염 일수가 증가하는 한편 겨울에도 한파일 수가 증가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전반적으로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는 온난화의 흐름은 피할 수 없다. 강수량도 이와 비슷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기후 변화의 과학적 평가에서 가장 권위 있는 국제기구인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도 제4차 보고서(2007년)에서 21세기 동안 기후변화가 진행되면서 각종 위험기상 출현 빈도수가 증가할 것이라고 일찌감치 경고하면서 이런 논리를 공식적으로 지지해주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뜻하는 글로벌 워밍(global warming)의 진행이 멈추어지지 않으면 단순히 기온만 올라가는 양태가 아니라 과거와는 다른 유형의 날씨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 지구온난화를 변덕스럽고 기괴하다는 의미로 글로벌 위어딩(global weirding)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이대로라면 미래에는 이 말이 지구온난화를 대체해서 쓰이지 않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기우이길 희망해 본다.
김성균 수도권기상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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