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잊혀진 송구영신과 근하신년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는 뜻의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말은 요즘은 연하장에나 나온다. 근하신년(謹賀新年)도 똑같은 신세다. ‘삼가 새해를 축하한다’는 인사말인데 별로 실감이 나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우리에겐 꿈과 희망보단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앞서게 되었다.

어느 정권이든 개인의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나와 내 자식세대가 이 나라에서 과연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전쟁과 기근, 독재와 민주화, 국가부도와 탄핵정국의 격랑 속에서도 “결과는 좋겠지”, “추의 균형을 잡아주는 신(神)의 손이 있겠지”라는 기대감이 있었는데 이마저도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이 엄습한다.

포용과 화해의 대명사 넬슨 만델라가 훌륭한 이유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설득해 27년간 옥고를 치르게 한 백인정권을 용서했다는 점이다. 그는 “남아공을 흑인 세상으로 바꾼다는 생각은 이기적인 것이다. 우리의 관대함과 자제력으로 백인들을 놀라게 하자”고 말했다. 지지자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며 나라를 이끄는 것은 쉽다. 정말 어려운 것은 국민 전체를 향해 더 크고 어려운 일을 하자고 도전하는 일이다.

원래 국민은 이기적 존재다. 1806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패한 프로이센이 위기에 처하자 철학자 피히테가 적국의 점령하에 있는 베를린학사원 강당에서 ‘독일국민에게 고함(Reden an die deutschen Nation)’이란 제목의 강연을 했다.

이 강연을 통해 피히테는 독일 재건의 길은 무엇보다도 국민정신의 진작(振作)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이기심으로 가득 찬 국민에게 교육을 통해 새로 태어날 것을 주문했다.

친일파라고 비난받는 춘원 이광수가 1922년 일제 강점기 때 쓴 ‘민족개조론’이란 글이 있다. 글을 쓴 시점과 상황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지만, 독선과 저주, 인격 살인이 횡행하는 지금 유용한 말이 있다.

거짓말과 속임수를 없애고, 탁상공론과 공상을 버리고, 표리부동한 자세를 취하지 말 것 등 97년 전의 글치고는 우리 현실과 너무 닮았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기성세대나 아직은 창창한 젊은 세대나 모두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적이 되고 있다.

양 세대 간의 갈등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고 정의와 적폐청산을 내세운 정권은 무능의 극치를 달리고 있다. 핵심 지지층은 무너지고 당면한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집권층만 애써 부정하는 것 같다.

2018년은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미미하게 끝났다. 경제도, 민생도, 비핵화도, 안보도 모두 뜻은 높고 고상했으나 방법과 수단은 낙제점이었다. 그 와중에 적폐청산의 망나니 칼은 피바람을 몰고 왔다. 사회 전체에 분노 게이지만 높아지고 분열과 반목의 골만 깊어졌다.

실패한 경제실험 ‘소득주도성장’이 제목만 바꿔 ‘소득주도성장 2.0’으로 등장하고 주휴수당을 최저임금 산출 시 제외해 달라는 690만 소상공인의 절규는 무참히 거부됐다.

누구도 누구의 말을 듣지 않는다. 정녕 우리는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우리는 진정 마음을 열고 양보하고 타협하며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만드는 지도자를 원한다. 안정된 생활 속에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나라를 원한다. 2019 기해(己亥)년은 송구영신과 근하신년이 같이 공존하는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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