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여기 연천이 있다

전곡선사박물관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유적에 있다. 전곡리유적은 1978년 동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된 곳으로 유명하다. 처음 주먹도끼를 발견한 미군 병사 그렉보웬의 스토리는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맞물려 색다른 재미를 더해 준다. 주먹도끼는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다. 짐승의 두꺼운 가죽을 벗길 수 있고 굵은 나무도 자를 수 있는 주먹도끼는 구석기시대의 만능도구다. 그래서 별명이 구석기 맥가이버칼이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것 같은 모양을 한 주먹도끼는 마치 잘 세팅된 물방울 다이아몬드를 연상시킬 정도로 좌우대칭의 균형미를 갖추고 있다. 좌우대칭의 양날을 가진 주먹도끼는 아무렇게나 툭툭 떼어내서는 만들 수가 없는 정교한 석기다. 머릿속에 그려진 설계도를 따라 의도한 작업 순서대로 차근차근 떼어내야만 완성할 수 있는 석기다. 주먹도끼를 처음 만들었던 호모 에렉투스들에게는 자기 눈앞에 보이지 않는 주먹도끼를 상상할 수 있는 생각의 힘, 소위 추상적 사고 능력이 있었다. 무려 150만 년 전의 일이다.

주먹도끼는 훌륭한 도구이면서 모양도 참 예쁘게 생겼다. 그래서 주먹도끼를 인류 최초의 예술품의 반열에 올려놓기도 한다. 이런 주먹도끼가 처음 발견된 곳은 프랑스의 생 따슐(St.Acheul)이라는 곳이다. 그래서 아슐리안(Acheulean) 주먹도끼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다. 이처럼 중요한 주먹도끼가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유적에서 발견되기 전까지는 오직 서양에서만 발견되었다. 그래서 서양의 구석기 학자들은 동양에는 주먹도끼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구석기시대부터 이미 서양과 동양은 좀 차이가 났었다는 주장인데 동양에서는 정교한 주먹도끼가 발견되지 않으니 기분 나쁘지만 딱히 반박할 만한 물적증거가 없었다. 그래서 전곡리유적에서 동아시아 최초로 발견된 주먹도끼는 세계구석기연구의 흐름을 바꿔놓은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경기도에서는 전곡리유적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수백억의 예산을 들여 2011년 4월 전곡선사박물관을 개관하였다. 유적의 보존과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박물관이다.

700만 년에 걸친 인류 진화의 위대한 여정을 극사실적으로 복원 재현한 고인류모형들과 40여 년에 걸친 전곡리유적의 발굴과 연구 과정을 통해 축적된 전시콘텐츠들은 관람객들에게 구석기시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박물관 실내외를 아우르는 공간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교육프로그램도 전곡선사박물관의 자랑거리다.

매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연천 전곡리구석기 축제는 올해로 27회째를 맞이하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고학체험축제로 해마다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어 유명하다. 2월6일까지는 연천구석기겨울여행이라는 주제로 겨울축제도 펼쳐지고 있으니 기억하시기 바란다. 초대형 눈조각을 배경으로 인생샷도 찍고 모닥불에 구워 먹는 맛있는 구석기바비큐로 배까지 채운다면 그야말로 일석이조,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연천은 오랜 기간 경기도의 머나먼 변방으로 여겨졌다. 심리적 거리감이 크다. 휴전선과 군부대로 대표되는 접경지역으로만 알려진 연천은 사실 전곡리유적 뿐만 아니라 비운의 경순왕릉, 호로고루를 위시한 고구려 3대성, 고려태조 왕건을 모신 사당인 숭의전, 세종이 17번이나 거둥하여 군사훈련인 강무를 직접 지휘했던 가사평벌판 그리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질곡을 품은 DMZ와 신망리까지 우리나라 역사여행을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유적이 모여 있는 보물과도 같은 곳이다. 거기에 수십만 년의 시간을 품은 현무암 주상절리의 절경과 두루미가 연출하는 우아한 군무까지 더해지면 왜 이제야 연천을 처음 와봤을까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이번 겨울이 가기 전에 연천 구석기겨울여행을 떠나보자. 새롭게 뚫린 도로들은 연천 여행을 더 즐겁게 해준다. 전곡선사박물관에 들러 후루룩국수지도를 챙기는 것도 잊지 마시길 바란다. 한반도 중심 구석기 나라, 통일한국의 심장, 좋은 사람들의 평화도시 연천이 여기에 있다.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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