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암동 재개발로 철거 위기
의정부시 관심 가지지 않아
개인이 사재 들여 복원·관리
이 시대 마지막 순수시인으로 불리는 천상병 시인이 살던 의정부시 장암동 수락산 자락의 고택이 멀리 충남 태안군 안면읍 대야도 바닷가 언덕배기에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까지 십 수년간 산 고택은 그의 영혼과 흔적이 남아있는 문화자산이다. 천상병 시인이 죽은 뒤 의정부시는 그를 기리기 위한 예술제를 열고 있지만 유품도 갈 곳이 없어 떠돌고(본보 2012년 9월21일자 1면) 고택마저 멀리 안면도에서 개인이 관리하고 있다.
지난 2일 설연휴를 앞두고 천상병 시인의 고택이 있는 곳을 찾았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홍성IC, 천수만대로를 거쳐 안면도까지 의정부에서 3시간 이상 거리다. 태안반도 끝자락 영목항으로 가는 도중 시인의 마을로 들어서자 대야도 어촌체험마을 갯벌이 끝없이 펼쳐지는 언덕배기 소나무 사이로 슬레이트 지붕과 시멘트 벽에 장독대가 있는 작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시인의 섬’이라는 푯대가 천 시인의 옛집임을 알리고, 간단한 이력 등을 적은 안내판이 손님을 맞는다. 시멘트 벽에 바로 난 살문을 여니 비닐 장판이 깔린 천장이 낮은 한 평(3.3㎡) 남짓한 방에 시집 등 몇 권의 책이 올려진 앉은뱅이 책상과 자그마한 책장이 전부다. 다른 방에는 대나무 소쿠리와 시 ‘귀천’을 담은 액자, 천 시인이 고택 앞에서 의자에 앉아 찍은 사진 한 장이 걸려 있었다. 그의 시 귀천의 구절처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손짓하는 구름을 향해 하늘로 올라간’듯 방은 햇살만 함께 했다. 고택 옆에는 천 시인의 애장품과 의자, 책 등 유품과 생전 절친하게 지내던 이수외 작가의 시화 등이 있는 문학관 겸 갤러리도 있었다.
현재 천 시인의 고택을 관리하는 이숙경씨는 “남편인 고 모종인씨(2010년작고)가 천 시인의 부인 목순옥씨로부터 장암동 고택이 재개발로 철거된다는 전화를 받고 사재를 들여 옮겨와 지난 2004년 말에서 2005년 초 께 복원했다”고 전했다. 이씨는 “남편이 인사동 카페 ‘귀천’에 자주 드나들면서 천 시인 부부와 가깝게 지냈고, 부부에게 경제적 도움을 줬다. 목순옥씨가 고마움의 표시로 고택이라도 옮겨 갈 수 있도록 철거사실을 알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에 의정부시에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목순옥씨가 고택을 가져가 달라고 남편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던 것 같다. 직접 관리해달라는 남편의 유언도 있고 해서 어렵지만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1930년 1월29일 출생해 1993년 4월28일 사망한 천상병 시인은 마산중 5년 때 등단, 서울대 상대를 중퇴했다. 우주의 근원, 죽음과 피안, 인생의 비통한 현실 등을 압축한 시를 많이 썼고 숱한 기행으로 유명하다.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루기도 했다. 의정부시는 그의 시 ‘소풍’에서 따온 둘레길 ‘소풍길’을 조성하고 지난 2004년부터 천상병 예술제를 개최하고 있다.
1972년 결혼한 천 시인 부부는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살다가 의정부시 장암동(현 장암동 수락리버시티 아파트 일대)에서 13년 가까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부인 목씨는 장암동 고택이 지난 2004년 일대 재개발로 수용되자 인근 장암동 상촌마을로 이주해 2010년 죽기 전까지 친정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의정부=김동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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