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둔감과 민감의 조화

같은 식탁에서 함께 좀 상한 음식을 먹어도 어떤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고 어떤 사람은 배탈이 난다. 똑 같은 상황의 일을 겪었는데도 어떤 사람은 잠을 잘 자지만 어떤 사람은 불면에 시달리기도 한다. 바로 둔감과 민감의 차이이다.

‘둔감하다’는 말은 본래 부정적 이미지가 강해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이다.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달로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나 사회 흐름에 둔하다면 이는 한 발 뒤처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둔감력은 긴긴 인생을 살면서 괴롭고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일이나 인간관계에 실패해서 상심했을 때, 그대로 주저앉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힘차게 나아가는 강한 힘을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외과의사라는 독특한 경력을 가진 소설가 와타나베 준이치의 베스트셀러 ‘둔감력(鈍感力)’이 2007년 일본에서 ‘올해의 유행어’로 선정되기도 했다. 둔한 감정이나 감각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둔감’이라는 말에 힘을 뜻하는 역(力)자를 붙인 저자는 ‘둔감력’을 재능의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의학 지식뿐 아니라 일생의 다양한 경험을 언급하며 ‘둔감함’을 예찬한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반드시 공통점이 있는데, 그가 갖고 있는 재능의 바탕에는 반드시 좋은 의미의 둔감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되면서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팽배해지고 사람들도 모든 면에서 지나치게 민감하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것처럼 아우성이다. ‘뭐든 빨라야 앞선다’라는 정신이 우리나라를 최고의 인터넷 강국으로 만든 이유이며, 현재의 대한민국을 빠르게 성장시킨 원동력이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천천히 가는 것이 빨리 뛰는 것보다 더 멀리 간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빠르게 뛰는 삶보다는 느리게 사는 지혜가 필요하다. ‘느림’은 어떻게 보면 ‘둔감하다’는 말과 같은 이미지의 단어 중 하나다. ‘둔감’에서 응축되어지는 에너지는 ‘민감’보다 훨씬 세다. ‘민감’에서는 얻을 수 없는 에너지다. ‘둔감’으로 생성된 에너지는 긍정의 에너지다. 이러한 ‘둔감’의 긍정에너지는 ‘민감’의 속도에너지보다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둔감한 사람의 행동은 모두 다 바람직하고 옳은 것인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민감보다는 둔감을 높게 평가하면서 둔감을 사실상 ‘대범’이나 ‘포용’으로 포장해온 그간의 관행을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삶을 영위하는데 둔감한 게 좋을까? 민감한 게 좋을까? 이 물음에 우리는 획일적이 아닌 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복잡한 일들이 있다. 이런 때일수록 둔감할 일과 민감할 일을 세심히 구분해야 한다. 나쁜 일에 둔감하고 좋은 일에 민감하면 어떨까? 변화가능성이 없는 일에 둔감하고 변화가능성이 높은 일에 민감하면 어떨까? 골든타임이 없는 일에 둔감하고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할 일에 민감하면 어떨까? 방향을 중시하는 일에 둔감하고 속도를 중시하는 일에 민감하면 어떨까?

둔감하다고 뽐내거나 우러러보는 마음도 경계할 일이지만, 민감하다고 주눅 들거나 경멸하는 마음도 없어야 한다. 지나치게 복잡화, 다양화, 기능화 된 현대사회에서는 둔감과 민감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정종민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前 여주교육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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