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경제성’은 죄가 없다

유정훈
유정훈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발표한 총사업비 24조 1천억 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사업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뜨겁다. 일부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정부의 이번 조치를 선심성 나눠 먹기로 규정하고 있으며, 지난 22일 야권에서 예타 면제 요건을 강화하고 면제된 사업에 대해서는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를 의무화하는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1999년 도입된 예타는 투입비용 대비 편익을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경제성 평가를 통해 공정한 공공투자관리제도의 기초가 됐으며, 정부의 재정건전성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경제성이 핵심 요소로 작동하면서 예타 통과를 위해 사업 쪼개기와 비정상적인 과소 설계가 남발되게 됐다. 하나의 노선을 500억 원 이하의 단구간들로 잘게 쪼갠 후 예타를 면제받는 편법은 교통망의 연속성을 파괴했고, 과도하게 줄인 사업비는 개통 이후에 더욱 큰 부담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말에 착공한 GTX-A는 과거 예타 통과를 위해 수서~동탄 구간의 경우 SRT와 기존 고속철도 선로를 공유하도록 설계함으로써 건설비를 과도하게 줄였다. 이로 인해 수서~동탄 구간의 GTX 운행횟수가 전용 선로를 건설한 파주~수서 구간보다 50% 수준으로 줄어 경기도 내 GTX 이용 형평성을 심각하게 해치게 됐다.

이에 기획재정부에서는 예타 20주년을 맞는 올해를 목표로 지역균형발전, 정책일관성, 사업특수성 등을 보다 강화한 예타 지침 개정을 준비해왔다. 엄중한 국내외 경제상황하에서 정부가 예타지침 개정과 이후 사업 평가에 소요되는 기간을 고려해서 예타면제를 선제적으로 시행한 것은 어찌 보면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만약 정부가 개정된 예타 평가지침에 따라 이번에 발표한 사업들을 추진했더라면 현재의 논란들은 대부분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개정 예타 지침에서 현재 40~50% 달하는 경제성 비중을 줄이고 ‘지역균형발전’의 가중치를 높이는 것이 예타 문제 해결의 본질은 아니다. 진정한 악마는 ‘실시계획 수준에 도달한’ 장래개발계획만을 경제성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도로와 철도 같은 기반시설이 있어야 공장이 들어오고 아파트가 건설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투자계획을 세우는 기업과 개발사업자는 없다. 그러다 보니 이미 개발 밀도가 높아 이용수요가 있는 곳에만 경제성이 확보돼 예타 통과가 되는 구조다. 전형적인 부익부 빈익빈인 셈이다.

따라서 예타대상 사업과 직접 연계된 장래개발계획은 경제성 분석에서 반영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물론 실시계획 수준이라는 조항은 현실성 없는 무분별한 개발 구상들을 핑계로 경제성이 없는 사회기반시설을 건설하는 것을 막는 조치다. 그러나 반영 여부를 따져야 하는 장래 개발계획이 단순히 뜬구름 잡는 얘기인지 정말로 같이 추진될 수밖에 없는 패키지 딜(package deal)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은 우리에게 있다.

예타 조사자의 분별력이 여전히 염려스럽다면 개발계획의 집행을 담보하는 조치를 요구하는 것도 가능하다. 삼성ㆍ현대 수준의 대기업, 경기도와 같은 광역지자체, LH와 한전 등 공공기관, 이도 아니면 국토교통부ㆍ산업통산자원부와 같은 주무 부처의 시행약정서를 받은 개발사업들은 경제성 분석에 포함을 시키자. 그래야만 낙후된 지역에 추진되는 사회기반시설도 확실한 개발사업과 연계될 때는 예타 통과가 가능해진다. 기업과 사람이 같이 가는 SOC 사업이 이번 예타면제를 통해 추구하는 지역균형발전의 진정한 모델이지 않는가.

‘정의란 무엇인가’로 유명한 마이클 샌델 교수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화폐가치화하기 어려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여줬지만, 막대한 국민 혈세가 소요되는 국가재정사업들에서 경제성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판단근거가 돼야 한다. 경제성은 죄가 없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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