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첫 삽이 능사가 아니다

유정훈
유정훈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에서 제외된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연장사업’을 조속히 추진하기 위한 경기도의 발빠른 움직임이 다각도로 이뤄지고 있다. 이미 2011년부터 입주가 시작된 수원 호매실지구는 총 면적 300만㎡, 계획 인구 5만 5천의 대규모 택지지구다. 칠보산에서 지구중심으로 흐르는 금곡천과 호매실천 주변으로 대규모 수변공원을 조성하고 다양한 공원들을 배치함으로써 지구 전체 녹지율이 28%에 달하게 된 자연친화적 택지개발사업의 모범이다. 그러나 승용차와 버스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교통기반시설로 인해 쾌적한 주거환경에도 입주민들의 생활 불편이 심각하다. 특히 호매실지구 입주민들은 신분당선 연장사업의 총사업비 1조 1천169억 원의 절반가량인 4천933억 원을 광역교통시설부담금으로 이미 낸 상태다. 지난주 열린 경기도 주최 간담회에서는 ‘광교~호매실 사업’의 조속한 예타 통과를 위해서는 경제성(B/C)을 높이고 사업시행여부를 결정하는 종합평가(AHP)에서 예타지침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정부에서도 예타 면제 사업에서 제외된 ‘광교~호매실 사업’은 제도개선을 통해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호매실지구 주민들의 오랜 바람이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예타 통과에 매몰되다보면 지난 20년 동안 경제성 확보 때문에 교통시설로서의 본질이 왜곡된 사업들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번 예타면제 사업에 포함된 ‘남부내륙철도’는 2012년 국토교통부의 사전타당성조사, 2014년~2016년까지 3년여에 걸쳐 추진된 예비타당성조사, 민간투자사업으로 방향전환 후 2017년~2018년까지 수행한 적격성 조사를 거치면서 0.45부터 시작한 B/C를 높이고자 온갖 기발한 비용 절감방안을 설계에 반영했다. 그 결과 21세기 초고속, 초연결 시대의 고속철도노선이 비둘기호, 통일호 시대에나 있었던 단선 철도로 설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업추진 주체인 경상남도에게 단지 몇 년 전에라도 2019년 1월을 예지하는 능력이 있었다면 경제성을 높이고자 이런 식으로 단선 고속철도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경기도에도 최근 유사 사례가 있다. 2024년 개통예정인 ‘7호선 도봉산~옥정 연장사업’이다. 이 사업도 2010년과 2011년에 각각 1차, 2차 예타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 후부터는 관계기관이 배수진을 쳤다. 장장 4년에 걸친 2013년~2016년까지의 3차 예타에서는 수차례의 설계변경을 통해 ‘B/C=0.95, AHP=0.508’의 눈물겨운 성적표를 받고 영광의 예타통과를 이뤄냈다. 그러나 이곳 역시 결과는 ‘단선’ 철도다.

지금은 당장 삽 뜨는 것이 시급하니 나중에 설계변경을 통해 바꾸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과거의 ‘선 착공, 후 변경’ 관행으로 기본 구조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신분당선 연장노선은 수원 호매실뿐만 아니라 경기도 남부의 대중교통 핵심축이다. 지역주민들의 그동안의 고통과 오랜 기다림을 생각하면 당장 첫 삽을 뜨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개통 예정인 2028년 이후 초연결 시대에 걸맞은 고속급행노선으로 추진돼야만 한다. 관계자들의 건투를 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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