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통계청은 연말 즈음해서 우리사회 전반에 대한 국민인식도 조사결과를 발표한다. 작년 말 자료를 보면 사회안전과 관련된 내용은 경찰에게 많은 고민과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 절반이 넘는 응답자(50.8%)가 범죄발생에 대해 ‘불안하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총 범죄와 교통사고 사망자가 각각 4.9%, 9.7%나 감소하는 등 주요 치안지표들이 나아졌는데도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 우리 경찰의 노력이 시민들의 눈높이에 못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치안환경은 시시각각 변하고 복잡하게 얽혀가고 있는데, 경찰의 인력ㆍ예산 등 인프라와 문제해결 역량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를테면 여성ㆍ청소년ㆍ아동ㆍ노인ㆍ장애인ㆍ실종자ㆍ범죄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 보호와 회복적 경찰활동(범죄자 처벌보다 피해자를 범죄 이전 상태로 회복시키는데 초점을 맞춘 경찰활동)은 최근 경찰에서 중요하게 떠오르는 업무분야다. 이처럼 치안영역이 확대되면서 경찰은 많은 부담을 안게 된다. 물론 필요한 인력과 예산이 제때 확보되면 좋겠지만 그게 만만치가 않다. 문제는 그 사이 시민들은 치안불안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대안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이른바 경찰과 유관기관ㆍ단체, 시민과의 치안 컨소시엄 형태의 협업이 좋은 해법이 될 수 있다. 예전에도 경찰이 자율방범대와 순찰을 하고,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방범시설 등을 보강해 왔지만 대부분 집행과정에서의 협력에 그쳤다.
최근 들어서는 초기 단계부터 이른바 절차적 정당성 확보를 강조하는 공동체 치안이 부각되고 있다. 처음부터 시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문제를 진단하고 함께 해법을 모색하는 진일보된 모습으로 협업의 방식이 발전해가는 것이다.
과거 마을 안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어르신과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의논해서 해결해왔던 전통이 있었다. 요즘은 국가적으로도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는 전문가 자문과 공청회ㆍ토론회 등을 거치고 관련부처가 협업해서 대책을 세워간다. 이제는 치안에서도 그러한 방식이 시도되고 있다.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공동체 구성원들은 치안정책에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시킬 수 있다. 경찰도 이에 기초해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이들과 협력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높일 수 있다. 모두에게 윈-윈(win-win)이 되는 셈이다. 특히나 사회적 약자 보호와 같은 일은 여러 기관ㆍ단체 및 시민들의 관심과 협업이 절실한 분야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치안주체’라는 인식을 갖는 것이다. 치안보조자가 아닌 치안주체라는 인식은 적극적인 참여와 협업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치안정책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높여 자연스럽게 법ㆍ절차 준수 문화로 나타날 수 있다. 나아가 치안의 최종목표인 범죄와 사고의 감소, 그리고 지역사회 안전으로 연결될 수 있다. 우리가 공동체 치안에 주목하고 지속 해나가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올해 경기북부경찰청은 보다 안전하고 행복한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하는 공동체치안’, ‘든든한 민생치안’, ‘굳건한 안보치안’, ‘따뜻한 인권경찰’ 등 네 가지 큰 틀에서 다양한 치안정책을 추진해 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핵심을 꼽으라면 단연 ‘함께하는 공동체치안’이다. 지역사회의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치안주체로 참여시켜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 보호, 선진 교통문화 정착, 민생침해범죄 근절 등 각종 현안들을 해결해 나가고자 한다.
“경찰이 곧 시민이요, 시민이 곧 경찰이다”라는 말은 경찰관들이 시민의 입장에서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함을 일깨우기 위해 강조하는 문구다. 경찰관이라면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금과옥조로 여겨지는 명언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시민도 경찰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공동체 치안의 요체도 함께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치안은 온전히 경찰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허물고,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협업해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동반자가 되길 기대해 본다.
최해영 경기북부지방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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