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스포츠 정책 균형감 찾아야

‘한국의 젊은 선수가 세계의 건각들을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아시아의 힘과 에너지로 뛰었습니다. 타는 듯한 태양의 열기를 뚫고, 거리의 딱딱한 돌 위를 지나 뛰었습니다. 그가 이제 트랙의 마지막 직선코스를 달리고 있습니다. 우승자 ‘손’이 막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손기정이 1936년 8월9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우승하는 순간, 당시 경기장내 아나운서가 한 멘트다. 당시 스물 다섯살 청년 손기정은 나라 잃은 설움을 안고 가슴에 일장기를 달은 채 낯선 이국땅에서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일궈냈다.

이어 1973년 당시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이에리사, 정현숙, 박미라 3명의 ‘태극낭자’들이 일본을 꺾고 한국 구기종목 사상 첫 세계를 제패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 양정모가 해방 이후 첫 금메달을 획득한 이래 동ㆍ하계 올림픽에서 한국 스포츠는 많은 스타를 배출하며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으로 자리했다. 또한 프로레슬러 김일을 비롯, 축구의 차범근, 손흥민, 야구의 박찬호, 류현진, 골프의 박세리,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등의 스포츠 스타들이 대한민국을 빛냈다. ‘박치기왕’ 김일은 가난으로 힘들었던 시절 국민들에게 통쾌감을 안겨줬고, 차범근, 손흥민, 박찬호, 류현진 등은 세계 스타들의 각축장인 유럽과 미국 무대에서 명성을 떨쳤다. 골프 박세리는 IMF 외환위기 당시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 우승으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심어줬다.

스포츠는 이 처럼 유명 선수들과 명승부를 통해 보는 사람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고,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종합격투기처럼 사람들에게 원시적인 본능을 자극시켜 대리만족감을 느끼게도 한다. 스포츠의 또다른 기능은 직접 참여를 통해 건강과 체력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생활체육’으로 대변되는 참여 스포츠는 국민들에게 건강한 삶을 영위케 하는 사회적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한국 스포츠는 ‘보는 체육’에서 ‘참여하는 체육’으로 무게중심이 점차 이동해 이제는 대세로 자리하고 있다. 이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체육정책 및 예산 배정 역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생활체육의 비중이 그만큼 커진 것이다.

상대적으로 전문체육에 대한 투자와 관심은 줄어들었고, 점차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스포츠계 폭력과 성폭력 등 일련의 사태로 인해 문제점이 불거지면서 소년체전 폐지와 합숙훈련 축소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엘리트 체육’으로 불린 전문체육이 점점 위축되고 있는 것이다. 일선 전문체육 현장에서는 대한민국 체육의 근간이 흔들리고 많은 스포츠 꿈나무들의 희망이 사라져 가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뿐만 아니라 일부 인기종목을 제외하고는 존립 자체가 흔들릴 것으로 우려한다.

얼마 전 한ㆍ일 교류전을 위해 우리나라를 방문한 일본 체육인으로부터 의미 있는 말을 들었다. 일본이 1964년 도쿄 올림픽 이후 체육정책을 사회체육(생활체육) 위주로 전환하면서 전문체육이 크게 위축됐단다. 그리고 56년 만에 다시 치르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쓰러진 전문체육을 일으켜 세우는 데 많은 시간과 경제적인 투자를 허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이 반세기 전에 시도했다가 실패한 정책을 왜 한국이 이제와서 답습하고 있는지 자기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체육에는 보여주는 전문체육의 기능과 참여하는 생활체육의 두 가지 기능이 있다. 대한민국 체육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쪽으로 치우진 정책이 아닌 두 바퀴가 균형을 잡고 함께 굴러가도록 해야 한다.

황선학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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