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무렵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파주 임진진 진서문(鎭西門)의 정확한 규모가 확인됐다.
파주시와 매장문화재 조사기관 한백문화재연구원(원장 서영일)은 지난 3월 시작한 임진나루와 임진진터 발굴조사를 통해 진서문 길이가 7.4m, 너비가 4.5m라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30일 밝혔다.
서영일 한백문화재연구원장은 “2015년 시굴조사 이후 4년 만에 진행한 발굴조사로 진서문 흔적과 성벽 일부가 나타났다”며 “진서문 규모는 조선시대 성문 중 대형에 속하는데, 그만큼 임진나루와 임진진 위상이 높았다고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진서문터에서는 홍예를 받친 기초석, 통로에 깐 대형 보도석, 커다란 측벽석이 출토됐다.또 문을 설치하기 위해 기둥 구멍을 낸 문확석 2기, 문지방석도 발견됐다.
연구원 측은 “진서문은 문짝을 안쪽으로 여닫는 형태였다”며 “동쪽 측변은 배수로 공사 과정에서 일부 사라졌지만, 서쪽 측변은 약 1단 정도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서문 통로부 안쪽과 성문 서쪽 측벽으로 유적이 연결되는데, 이에 대해추가 조사를 해야 한다”며 “보도와 접안시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진서문 외부도발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시 관계자는 “고려시대에도 임진나루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시설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비·복원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임진강 남쪽에 설치한 임진나루는 북쪽 장단나루와 함께 교통 요지로 꼽혔던 곳이다. 태종 18년(1418) 2월 “어가(御駕)가 임진나루 북쪽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있고,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한양을 떠나 북녘으로 피신하면서 한밤중에 빗속에서 임진나루를 건넜다고 전해진다.
영조 때인 1755년 군진인 임진진이 설치됐고, 나루 안쪽 협곡을 가로지르는 성벽을 쌓으면서 진서문을 냈다. 석조 홍예 위에 지은 목조 누각은 임벽루(臨壁樓)라고 불렀다.
파주=김요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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