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불을 밝혀 높은 곳에 두자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라는 말이 성경(누가 11: 33)에 쓰여 있다. 이 말은 불을 켜서 다른 사람을 밝히려면 높은 곳에 두어서 잘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뜻일 게다. 내가 사는 이곳이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도시라는 것을 인식하고 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수원에 살았던 학생이 하버드대학에 면접시험에서 ‘당신이 사는 곳에 대해 자랑할 것을 말하라’고 했는데 아무 말도 하지 못해서 떨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수원에 사는 사람이 다른 나라 사람보다 더 모를 수도 있다는 현실을 절감하게 한 일화다. 하버드대학에서 극히 평범한 질문을 던졌다는 것에 한편으로 또 놀라운 일이다.

사람이 자신을 알고 가까운 주변부터 알아가는 것인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고 산다면 그 학생이 미래의 핵심역량을 지니도록 교육하고 전 세계적인 리더로 키우는 데 필요한 소양을 가졌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접했을 때 우리는 늘 교육의 방향을 바로 잡으려는 유연한 사고와 태도를 지녀야 할 것이다. 항상 바르고 아름다운 방향으로 말이다. 이제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으로 방향을 돌려보겠다.

플라톤(대화편 제7권)의 ‘동굴의 비유’이다. 동굴 안은 가시적인 현상의 세계를, 동굴 밖은 지성에 의해서(라야) 알 수 있는 실재(實在)의 세계를 각기 비유한 것이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실제들을 인식하는 것인데, 이 인식에 이르는 길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동굴 속 죄수들은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라 사물의 진모습(본질)은 모든 것을 비춰진 그림자(허상)만 바라보고 있다. 만일에 어떤 죄수가 이 동굴을 나와서 햇볕과 사물의 진모습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많이 고민이 된다.

우리는 항상 올바른 자유의지를 선택(행사)할 수 있다. 여기서 죄수 중 누군가가 아름다운 밖을 보고 다시 동굴 안으로 돌아가 밖의 세상을 전하고 함께 동굴 밖으로 나오도록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용기 있는 자가 되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삶을 변화시켜 줄 수 있어야 한다. 선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기서 한 걸음 나아가 다른 사람들도 선하게 살도록 우린 행동해야 한다.

‘불을 밝혀 높은 곳에(등경 위) 두자’고 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 나 혼자 잘 살고 나 혼자 올바로 살면 그뿐이지 하는 인생관에서 나의 선함(불을 밝힘)을 토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선하게 변화시키는(높은 곳에 불을 올려놓은) 행동이 이 시대에 절실히 필요한 것 같다. 이것이 학생이 공부해야 하는 진짜 이유이다.

정승자 곡반초등학교 교장·시인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