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4월 419혁명과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과 전통을 이어받은 87년 6월 민주화운동은 오늘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의 출발이 되기 때문이다. 국가 기념일로 지정된 6월10일을 시작으로 6월29일, 직선제 개헌을 수용하는 629선언이 발표될 때까지 6월 한 달 내내 전국에서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다. 최루탄에 맞아 목숨을 바친 청년도 있었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피를 먹고 살아간다는 말처럼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지키고, 키우기 위해서 많은 분의 희생과 수고가 있었다. 멀리는 419에서부터 유신독재와의 싸움, 80년 광주시민의 희생과 80년대 지속된 민주화운동, 그리고 87년 6월 민주주의의 위한 국민운동까지 온몸을 던졌던 희생을 밑거름으로 민주주의는 진화됐다. 물론 6월 민주화를 위한 국민운동 이후에도 학생과 노동자, 시민의 희생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민주주의란 주권자인 시민이 지배하는 가치와 사회체제이자, 대화와 타협을 통해 더 많은 시민의 행복을 실현하려는 정치제도이기도 하다. 더 많은 행복이란 쉽게 수량으로 가늠해서는 안 된다. 최근 모두를 위한 도시란 구호가 유행하듯, 민주주의 성숙도는 다수에 의해 소외되는 소수의 존재를 통해 판단될 것이다.
시민의 지배가 온전히 실현되려면 현재의 선거제도와 정치시스템은 부족하다. 선거기간에만 자유롭다고 영국인을 조롱한 루소의 지적도 있었지만 여전히 출구를 찾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선거제 개혁의 법안까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모두를 위한 민주주의까지는 아니더라도 양극화로 심화되는 비정규직의 고통과 동네 자영업자의 몸부림은 왜곡된 정치가 낳은 현실이다. 다수를 지배하는 자본의 힘을 정치가 제어하지 못해 다수가 소수에 의해 움직이게 되는 뒤틀림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87년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며 거리를 가득 채웠던 시민의 함성은 이후 사무실과 마을에서 조용한 일상으로 녹아들어 갔다. 그리고 그 힘은 30여 년이 지나 역사를 정방향이 아닌 역주행으로 민주주의를 퇴보시켰던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러나 반복되는 거리에서의 정치는 많은 희생과 수고를 필요로 한다. 힘을 가지고 있는 시민이지만 그 힘을 자주 발휘하기는 어렵다. 다시금 생활현장에서 민주주의를 키워가야 한다.
거리가 아닌 일상에서의 민주주의를 발전시켜가려면 선거제 개혁을 마무리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선거 만능에서 벗어나 시민의 지배를 실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방식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대표의 선출을 선거만이 아닌 추첨제의 도입을 제안한다. 선거는 시민보다 탁월한 사람을 선출하지만, 추첨은 보통시민을 대표로 선출하여 시민의 뜻을 잘 반영할 수 있다. 최근 주민참여예산 위원 선정이나 주민자치회 구성 과정에서 추첨을 통한 선출이 확대되고 있다. 생활현장에서부터 추첨제를 다양하게 적용하여 풀뿌리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 풀뿌리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는 추첨제와 함께 직접 참여를 통해 실천적 활동이 필수적이다. 또한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주민활동의 성장은 생활현장을 넘어 직접민주주의 영역을 넓혀주고 있다. 작은 단위에서부터 추첨제의 다양한 실험, 중앙 집중에서 지방분권과 마을 자치로, 풀뿌리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강화로 한층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6월 민주화운동 32년을 돌아보며, 다음 세대의 민주주의를 생각해 본다.
유문종 경기도지속가능발전협의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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