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우리는 무리 지어 숲속을 걸어 지났다
호수의 물내음이 희끗희끗하게 어둠을 타고 올라왔고
수목들은 밑동을 밝힌 전등불 속에
저마다의 빛깔을 낮추고 모여 서 있었다
그 듬성한 녹색의 불빛 곁을 걸어 지날 때였다
나무들의 웅웅거림과 밤공기를 타고 솟구치는
새들의 날카로운 외침이 사방에서 들려왔고
보문 호수를 비추는 적당히 달아오른 달빛과
둘둘 말린 파라솔의 날개들이 밤새의 소리를 따라
일제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위대한 시인의 시구와 유명한 교수의 강의를 잠재우는
더 위대한 어둠을 걸치고서 우리들은 조촐하게 날아올랐고
이만일천일백칠십칠 일 중에 축제의 날이
며칠이나 되는가를 헤아리며 호반을 떠다녔다
숲이 오슬오슬 한기를 느낄 즈음에야
불이 켜진 숙소가 눈에 들어왔고 우리는 날개를 접어내렸다
더없이 긴 그림자를 숲에다 남기며 길을 돌아와
계단을 오르고 방문이 딱 하고 열리는 소리를 들었고
아, 이제 축제는 끝났어 하는 희미한 독백을 들어야 했다
어둠을 걷어내고 들어선 방 안에는
그러나, 불 밝힌 서울행 티켓과
거실까지 길게 이어진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었다
-귀가행 축제에 오른 것을 환영합니다
먼 숲에서 새벽별이 날아내리는 소리가 하나 둘 들려왔다
전정희
부산 출생. 단국대 졸업. 시집 <바람이 머문자리>로 등단.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한국현대시인협회‚ 나래시조‚ 한국문학비평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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