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일본과의 경제전쟁, 말이 아니라 실력이다

명량해전에서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을 이긴 이순신은 그날 일기에 이렇게 쓴다. “천행(天幸)이었다.” 하늘이 도운 것이다. 조수의 흐름을 이용한 이순신의 탁월한 전략이 성공했는지 왜군이 겁을 먹었는지 여하튼 승리했다. 이순신이 일기에 ‘천행’이라고 쓴 것은 그만큼 힘든 전투였고 천하의 이순신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군사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이순신 승리의 결정적 요인은 함포에 있었다고 말한다. 조선 배에는 함포가 있었고 일본 배에는 없었다. 일본의 조총은 조선 수군의 총통에 비하면 파괴력이나 사정거리가 게임이 되지 않았다. 고려 말 최무선이 중국으로 건너가 화약과 대포 제조기술을 배워온 것이 결정적 도움을 줬다. 지금 이런 옛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은 전쟁에서의 승리는 열정과 구호만으로는 얻어지지 않으며 오랜 기간 준비한 실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이 위자료를 내라는 대법원 판결을 지켜야 한다는 우리 입장과,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문제라는 일본 입장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타협점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가 시작된 후에 상황은 악화일로에 있다. 국제무대에서의 여론전과 일본의 대화 거부,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 제외로 제2탄의 경제보복이 예정돼 있다. 국내에서도 반일본 분위기가 극에 달해 일본제품 불매운동, 여행 취소 등 끝이 보이지 않는 총성 없는 전쟁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내놓는 ‘친일-반일’ 프레임은 사안을 해결할 본질이 되지 못한다. 국민을 반일 경제 전쟁에 동원하려면 전쟁을 통해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본과는 어떤 관계로 가려는지 명확히 설명해 줘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무기가 무엇인지, 그 무기로 일본을 이길 수 있는지를 알려줘야 한다.

협상론을 가르치는 이경묵 서울대 교수는 한일 경제 전쟁의 핵심은 입장(Position)과 이해관계(Interests)를 분리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물론 주요 관련국인 미국과 중국의 입장이 뭔지, 이해관계가 뭔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이 전쟁을 해결할 수 있다. 입장을 바탕으로 협상하면 답이 나오지 않지만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협상하면 해결책이 보인다.

지금 청와대는 이번 전쟁을 통해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불법으로 만들어 도덕적 우위를 점하고, 배상금을 받아 일제로부터 피해를 받은 분들의 한을 풀어주고, 우리가 10배 이상 피해를 보더라도 일본에 본때를 보이자는 입장으로 보인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경제 전쟁은 과거의 땅따먹기 전쟁과 다르다. 땅따먹기 전쟁은 고정된 파이를 가지고 누가 많이 먹느냐는 전쟁이고 파이가 고정돼 있지 않은 경제 전쟁은 이긴다고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다.

전쟁 과정에서 죽는 것은 우리 기업과 근로자, 나아가서 불쌍한 국민들뿐이다. 그런 손실을 감수할 정도의 명분이 있는 전쟁이어야 국민들의 동참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또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근거도 확보해야 한다. 이순신도 천행으로 12척의 배로 싸워 이길 수 있었다. 지금의 지도자가 12척의 배로 따라오라고 하면 절대 따라가지 않는다. 지도자는 12척의 상황을 만들면 안 되는 사람이다. 그런 상황으로 몰고 간 선조와 조정 대신들은 역사의 죄인이다.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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