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없는 포용국가·평화 프로세스 등 국민여론 좋지만
“문제는 경제”… 소주성·혁신성장·공정경제 ‘3축 경제기조’
추진 과정 매끄럽지 못해… 내년 총선서 민심 드러날 것
文정부 성공 위해선 黨과 정부 건강한 ‘긴장 관계’ 유지해야
日 경제침략을 전화위복 기회로… “脫日·克日·超日 나서야”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3대 축인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의 추진 과정이 매끄러웠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정에 대한 전반적인 점수를 매긴다면 ‘B 학점’을 주고 싶다.”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체감도가 높다고 볼 수 없다. 어떤 형태로든 내년 총선에서 민심이 드러날 것이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59)가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방향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자문위원으로 참여,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구상하는 데 힘을 보탰던 김 교수는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상호작용을 통해 같이 추진돼야 한다는 점에 방점을 찍으며 현 정부의 정책 추진 방향의 변화를 당부했다. 김 교수를 만나 현 정부의 전반적인 정책에 대한 진단과 평가, 청년 창업과 일자리 등에 대한 고언을 들어봤다. 김 교수와의 인터뷰는 이달 초 신촌에 위치한 연세대학교 내 교수 연구실에서 한 시간 여 동안 이뤄졌다.
-문재인 정부의 전반적인 정책을 진단해 준다면.
문재인 정부가 지난 2017년 조기 대선으로 인해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 김진표 의원(수원무)이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책을 구상했고, 저는 산하 기획분과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국민의 나라,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100대 국정과제’를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국민적 여론은 남·북·미 정상회동, 남북·북미정상회담 실시 등의 성과에 따라 대체적으로 좋은 편이다. 사회 정책 역시 국정기획자문위에서 포용적 복지국가론에 기반해 아동수당 등 복지정책을 강화하고 차별 없는 사회를 추구해온 만큼 평가가 비교적 좋은 것 같다.
문제는 경제정책이다. 국정기획자문위에서 생각한 경제 정책의 기본 틀인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공정경제 등은 동시에 진행됐어야 했다. 하지만 집권 1년 차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이었던 최저임금 인상 정책, 집권 2년 차 혁신성장 추진 등 정책들이 시차적으로 진행돼 균형 있게 추진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소득주도성장이 겨냥한 내수시장 활성화도 중요하지만 한국경제는 구조 개혁도 매우 중요하다. 국민들의 경제 체감이 지난 2년여 동안 높았다고 볼 수 없는 만큼 내년 총선에서 어떤 형태로든 민심은 드러날 거라고 생각한다. 다행인 점은 올해 3대 핵심 신산업인 미래차와 시스템반도체, 바이오산업 연구개발 등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는 것이다.
-20대 국회가 비난을 많이 받고 있다. 국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보는지.
정치인들은 지지층에 지지를 호소해야 하는 동시에, 자신이 속한 전체 공동체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 이중적 속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정치인들은 자신의 지지층에 대한 목소리만 대변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20대 국회가 지지부진한 가장 큰 이유다.
올해 우리 사회에는 공동체 전체의 발전을 위한 경제·사회 전반을 향상시키는 것과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공고히 해야 하는 전 국민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전체 국민을 대변하는 이 같은 정책이 부족하자,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실망감과 혐오를 받는 것 같다.
이를 개선하는 방안은 현재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으로 올라와 있는 선거제 개혁의 추진이다. 정치인이 갖춰야 할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국민 대표성’인데, 현재 시행 중인 선거제는 사실상 지역주의와 세대 정치에 기반해 있는 ‘양당제’ 시스템이어서 국민을 제대로 대표하지 못하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현재 국회에 제안된 선거제 개혁안들은 국민들의 대표성을 더 많이 담아낼 수 있는 온건 다당제 성격을 갖고 있어 선거제 개혁이 매우 중요하다. 아울러 정치인들로 하여금 정치의식을 바꾸게 하는 등의 문화 변화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여야 모두 공천룰을 정비하며 21대 총선 대비에 나서고 있다. 각 정당이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더 이상 과거 제갈공명식의 정치 진단은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자의 입장에서 봤을 때 선거는 ‘과학’인 만큼 정책을 포함한 ‘프레임’과 ‘인물’ 등이 총선에서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중앙에서 바라봤을 때의 전국적 흐름과 지역구의 민심이 다른 만큼 ‘인물’도 관건이다. 여야 모두 내년 초까지 새 인물 수혈을 위한 치열한 경쟁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총선은 대선과 달리 해당 지역구의 민심을 반영할 수 있는 인물 확보 문제가 매우 중요하다. 구(舊) 정치인에 대항할 새로운 인물들을 어떻게 지역에 내보낼 것인가가 관건인 것이다. 즉 민주당 이해찬·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새 인물 충원을 위한 ‘인재 영입’에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겠다고 얘기하는 만큼 프레임과 인물을 어떻게 끌고 가느냐가 관전 포인트다.
-민주당이 진보 집권 100년론을 외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고,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원내 1당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디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보는지.
현행 대통령제의 권력 구조 하에서는 당과 정부 간 건강한 ‘긴장 관계’가 잘 유지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이 정권의 시녀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앞선 정권을 보면 대체적으로 집권여당보다는 청와대가 늘 우위에 있었다. 이에 비해 문재인 정부는 생산적인 당정 협력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울러 청와대가 당에 대해 일방적으로 군림하는 게 아니라 당의 목소리를 의사결정에 잘 반영하기 위해서는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3선 국회의원 출신의 노영민 현 청와대 비서실장과 임종석 전 비서실장, 강기정 정무수석 등 오랜 의정경험 활동을 바탕으로 정무적 판단을 잘하는 분들의 역할이 컸다. 당정청 관계는 공식·비공식적 채널이 모두 활발히 가동돼야 하고, 경우에 따라 야당과의 비공식적인 협의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해찬 대표가 당의 실세고, 정치적 영향력이 있어 청와대와 각 정부 부처들과 대등하게 정책 논의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 하에서 이뤄지는 당정 협의는 앞선 정부들과 비교할 때 원활히 진행되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로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일 관계 해법에 대해 고견을 주신다면.
한일 관계 문제는 역사·경제적 요소들이 결합돼 있어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 비해 더욱 특수성을 띠고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 하의 식민지 통치 역사 등을 보더라도 세계 역사에서 한 국가가 인접한 국가에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고 있는 경우도 드물다.
특히 일본이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를 결정한 만큼 ‘원칙적 총론’ 대응과 문제 해결을 위한 ‘각론적 해법’을 같이 결합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총론적 시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우리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일본에 의존해온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함으로써 현재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탈일(脫日), 극일(克日), 초일(超日)해야 한다. 강제 징용 배상에 대해선 외교를 통한 각론적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
한편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 수립 100주년을 맞은 우리 국민들은 일제 강점기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하고 있는데, 한일 관계 갈등이 겹쳐 ‘반일’ 감정들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우리 국민들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 ‘일본 제품 불매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정치가 가져야 할 중요한 미덕은 책임윤리다. 다가오는 8·15 광복절 경축사에 문재인 대통령이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가 주목된다.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학에서 청년들을 만나면 가장 큰 어려움을 ‘실업’ 문제라고 한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기성세대가 마련해줘야 하는 만큼 우선 미안함을 전하고 싶다. 청년실업률에 대한 지표가 대체로 10%가량으로 보이는데, 실질적인 실업률은 2배가 넘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따라 청년들이 현장에서 겪고 있는 고통들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형태로든 정부와 국회, 기업들이 청년들의 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청년 실업률이 낮은 선진국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해야 하고, 특히 청년실업 문제는 기업·노동조합과 정부, 공익적 사회단체 등의 사회적 대타협도 뒷받침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청년들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을 잘 세우면, 오늘보다는 내일, 현재보다는 미래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대담=김재민 부장/정리=정금민 기자
사진=윤원규 기자
김호기 교수는…
1960년 경기 양주 출생
연세대학교 사회학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석사
빌레펠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박사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교수
한국정치사회학회 부회장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위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회 미래희망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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