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상순 광주광역시에서 학회 세미나가 열려, 교통편을 고민하다가 이동시간이 제일 짧은 수서에서 광주 송정역으로 가는 고속열차를 타고 갔다. 스마트폰 앱으로 승차권을 예매하고 동탄역에서 출발했다. 대중교통을 오랜만에 이용하는 거라 어색한 점이 있었는데, 승차 시 승차권 확인을 하지 않고 내릴 때까지 검표를 하지 않는 것이다. 가끔 승무원들이 객차를 지나갈 때가 있지만, 승객 누구에게도 표 확인을 하지 않았다. 추측건대 매표하지 않은 빈자리에 사람이 앉아 있으면 좌석표를 확인하는 방식인 것 같다. 이는 승무원의 일도 줄이고, 승객에게도 불편함을 주지 않으며, 승객의 인권도 존중해주는 좋은 방식인 것 같다. 또한, 객실이 조용했고, 전화통화는 밖에서 하는 등 실내 분위기가 좋고 열차 속도도 빨라 기분 좋게 광주에 도착했다.
세미나를 마친 다음 날 광주 송정역에서 승차를 하였다. 앞자리에 중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학생이 친척집에 가는 것 같았다. 배웅 나온 60대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보니 학생이 처음 고속열차를 이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디에서 내려 누구를 만나라는 이야기를 몇 번씩 손자에게 말했다. 스마트폰 데이터를 아껴야 한다는 것과, 짐이 세 개이니 꼭 챙겨야 한다는 말도 몇 번씩 했다. 학생의 좌석은 앞자리 창가인데 뒷자리에 앉은 내 무릎을 비집고 들어와 계속 이야기를 해서 손자를 걱정하는 할머니의 모습보다는 교양 없는 사람으로 생각돼 기분이 조금 언짢았다.
배웅하는 분들은 모두 하차하라는 안내 방송이 있었는데도 학생의 할머니는 미처 내리지 못하고 열차가 출발했다. 할머니는 엄청 당황해 안절부절못했다. 그때 60대 정도의 남자 분이 와서 자신도 이런 경험이 있는데 다음 역에 내려서 사정을 이야기하면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고 나갈 수 있다는 설명을 하며 안심시켜 줬다. 잠시 후 지나던 승무원이 상황을 파악하고 할머니에게 어떻게 해야 빨리 돌아갈 수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 할머니는 승무원이 알려준 역에서 내렸다.
오면서 차창을 바라보며 생각하니, 성경에 나오는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생각났다. 갑자기 친절한 60대 남자 분은 선한 사마리아인이고 나는 바리새인이 된 것처럼 여겨져 부끄러웠다. 내가 그동안 원리원칙과 매너만을 중시하며 더 큰 가치를 잃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본다. 갈 때나 올 때나 고속열차 승무원들의 품격 있는 서비스와 승객들의 높은 공중도덕 수준에 기분이 좋았다. 비록 학회 세미나 참석을 위한 이동이었지만, 이번 광주 여행은 잠시 동안 일상을 벗어나 바쁘게만 살아온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즐거운 탈출이었다.
최인호 김포대학교 정보통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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