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수출규제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정부와 업계는 수입선 다변화와 국산화를 병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수입다변화의 경우 대상 품목들이 세계시장에서 일본지배율이 높아 대체품 찾기가 쉽지 않고, 설령 찾아도 산업 현장의 생산 및 운영체계가 기존 일본 제품에 최적화돼 있기에 변경에 따른 혼란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국산화하는 것이다.
정부도 핵심 소재, 부품, 장비의 국산화 연구개발사업 3건에 대해 시간의 중요성을 감안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국가재정지원을 통한 국산화에 시동을 걸었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차세대 이차전지 위주의 ‘전략핵심소재 자립화 기술개발’, 수치제어장치(CNC)를 포함한 ‘제조산업시스템 스마트제어기 기술개발’과 연구소 및 학계가 보유한 기술 이전과 사업화를 위한 ‘테크브리지 활용 상용화 기술개발’에 2조 원 규모의 예산을 반영한다고 발표했다.
필자는 한때 공작기계 제조회사에서 수치제어장치(CNC)를 포함한 부품소재 조달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어, 이 분야를 참고로 국산화를 위한 몇 가지 전제조건을 생각해 보려 한다.
우선은 국산화의 방향은 단순 대체가 아닌 글로벌 1인자를 목표로 해야 한다. 글로벌 시대 2인자의 몫은 조금이다. 같은 방식의 기술경쟁으로는 1인자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고, 지명도를 뛰어넘기 힘들다. 새로운 방식과 기술의 적용, 즉 기존의 프레임을 벗어난 혁신과 변화가 국산화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
둘째로 국산화를 주도하는 주체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 공작기계를 예로 들면 우리 기업은 부가가치가 높은 부품인 CNC(수치제어장치)와 서보모터를 일본 FANUC사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그것도 30년 이상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기술이 부족해 국산화를 못 한다기보다는 우리 기업은 투입해야 하는 자원이 크고, 지금 당장 아쉬울 게 없기에 에둘러서 수입이 효율이요 국제 분업이라고 말해왔다. 동일 제품을 만듦에 있어 핵심 부품 및 소재의 분업(의존)은 효율이 아니고 종속이다. 일본의 무역규제로 이 종속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되었다. 이윤 못지않게 영속성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기업들이 국산화에 주체가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셋째는 개발된 제품을 반드시 이용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과거에도 많은 부문에서 국산화 시도가 있었지만, 수요자가 이용을 외면해 실패로 돌아갔다. 국산화는 한 번에 완벽한 제품이 나올 수 없기에 이용하면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향상시키겠다는 이용자들의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과거와 지금은 다르다. 그때는 선택이었을는지 모르나 지금은 생존이 달린 필수가 되었다. 최근 모 기업에서 CNC를 개발, 상용화를 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정부도 국산화 제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지원은 장기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역사 이래 지금처럼 국산화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인식한 적이 없다. 기술면에서 우위인 일본산 소재부품을 대체하는 국산화이기에 필연적으로 긴 호흡의 접근이 필요하다. 어쩌면 수년 걸릴 수도 있다. 그동안 기업이 국산화를 못해왔던 이유가 있다. 국산화에 소요되는 돈과 인력, 기술을 감당할 여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속적 지원과 기업의 노력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1등을 이기면 1등이 되 듯, 글로벌 1인자 제품을 국산화한다는 것은 글로벌 1인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기업이 경제 외적요인에 흔들림이 없을 것이며, 그동안 일본이 부품소재 분야에서 누려왔던 글로벌 시장에서 이익을 놓고 대등하게 일본과 겨루게 될 것이다. 일본이 우리에게 둔 수출규제의 수를 자충수로 돌리려면 국산화에 대한 우리 모두의 비상한 각오와 공감이 필요하다.
이계열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통상본부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