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故 김성열 선생을 기리며

1990년 5월 26일! 수원에는 아주 슬픈 일이 있었다. 극작가 겸 연출가이신 극단성 대표 고 김성열 선생을 저승으로 보내 드리는 노제( 路祭)가 수원화성 화서문(華西門)에서 거행 되었다. 그 사납던 태풍도 가신님의 길을 보듬듯 사그라지고, 청명하기 이를 데 없는 하늘은 마치 하늘로 오시는 길 조금이라도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한 것 같다. 하늘과 땅은 그를 어서 오라고 손짓 하는데, 나는 왜 이리 슬프고 먹먹하기만 할까?

수원 문화예술에 한 획을 그은 가신님은 척박했던 수원의 연극문화를 국제무대에 우뚝 세우신 분이기도 하다. 연극에 문외한이던 나도 관심을 갖게 해 주신 장본인이시다. 가신님의 정신을 어떻게 이어나가는지 궁금했는데, 다행히 그와 삶을 같이했던 분들이 뜻을 이어받아 문화사업을 계속하겠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다. 노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다. 그리고 아쉬움이 엄습해 온다.

전해 들은 소식으로는 가신님은 연화장에서 화장 후, 마지막 생을 보냈던 가평에 안치된다고 한다. 가신님은 마지막 생을 가평에서 보냈지만, 그의 온전한 삶은 수원에 있는데….

오래전 수원연화장 설계할 때 있었던 이야기를 한번 해 볼까 한다. 당시 수원시장이었던 고 심재덕 시장께서는 장사문화에 관심이 상당히 많으셨다. 연화장 마스터 플랜에 대하여 브리핑하는 자리에서 나는 한 곳을 가리키며 “시장님! 이곳은 향후 수원시를 빛내고 돌아가신 각계각층의 분들을 모시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계획한 곳입니다. 시장님께서도 돌아가시면 화장도 하시고, 이곳에 모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곳을 시민들이 수시로 찾을 수 있는 공원 같은 계획을 하겠습니다.”

그 후 시장님께서는 돌아가신 후 연화장에서 화장을 하셨고, 연화장은 대한민국환경문화상과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다. 물론 간단한 문제는 아닐지 모르나 어떻게 생각하면 꼭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기준이야 정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시설들은 선진국에 가 보면 얼마든지 있다. 거대한 표석을 세우자는 것이 아니라 검소하면서도 오랫동안 기억될 조그만 표석을 만들면 된다. 우리 수원시가 늦은 감은 있지만, 다시 한 번 우리나라 장사문화를 이끌어 보자!

김동훈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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