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사슴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하다니

김기호
김기호

중국의 고전 사기에 나오는 새겨둘 만한 이야기다. 강력한 군주였던 진나라의 시황제가 죽자 측근 환관인 조고(?~B.C. 208)가 거짓 조서를 꾸며 태자 부소를 죽이고 어린 호해를 세워 2세 황제로 삼았다. 현명한 부소보다 어리고 용렬한 호해가 다루기 쉬웠기 때문이다. 호해는 “천하의 모든 쾌락을 마음껏 즐기며 살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어리석었다. 조고는 이 어리석은 호해를 교묘히 조종해 경쟁자인 승상 이사를 비롯, 많은 구신들을 죽이고 승상이 돼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자 역심이 생긴 조고는 중신들 가운데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내고자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폐하, 말을 바치오니 거두어 주시오소서”, “승상은 농담도 잘 하시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다니. 어떻소? 그대들 눈에도 말로 보이오?” 말을 마치자 호해는 웃으며 좌우의 신하들을 둘러봤다. 잠자코 있는 사람보다 ‘그렇다’고 긍정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고는 부정한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여 버렸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 후 천하는 혼란에 빠졌다. 조고의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백성들이 도탄에 빠지자 각처에서 진나라 타도의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지록위마는 위압적으로 남에게 잘못을 밀어붙여 끝까지 속이려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하는 뜻으로 사용된다. 지금 이 나라에도 가족 전체가 반칙과 불공정의 종합백화점인 자가 법을 다루는 자리에 앉아서 위압적으로 정의와 개혁을 강요하고 있다. 그들 편에 선 자들은 세를 형성하고 시위하면서 모두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하고 있다. 사슴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적폐청산이나 가짜뉴스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래서 지금 이 나라는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쪼개져 혼란을 겪고 있다.

그들 진영의 사람들은 ‘내로남불’과 ‘조로남불’로 일관한다. 더욱이 북한의 언행에 대해선 사슴인데도 말이라고 눈치를 보면서 부추긴다. 북한은 최근 3개월간 북한판 이스칸데르(KN-23)·에이태킴스(ATACMS·전술미사일) 탄도미사일 2종과 400㎜급 대구경·초대형(500~600㎜급) 방사포 등 신형 방사포 2종의 신형무기를 발사해서 우리를 심각하게 위협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5월4일과 9일 동서부 전선의 전 부대들이 참가해서 남한 표적을 향하여 화력타격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국가 안보를 수호할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유엔 연설에서 북한이 남북군사합의를 잘 준수하고 있다 했다. 국방장관은 우리가 무기개발 시험하듯 북한도 신형무기를 시험발사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의 신형 4종 병기들은 시험발사용이 아니고 실전 배치되는 핵무기에 버금가는 무기들이다. 초대형 방사포를 제외하곤 3종의 신무기 모두 최대 비행 고도가 25~50여㎞에 불과, 기존 한·미 미사일 방어망으로는 요격이 불가능하거나 어렵다. 요격범위인 최신형 패트리어트(PAC-3MSE)는 주한미군에게만 있고 그것도 턱없이 부족하다. 신형4종을 섞어 쏘면 대책이 없다. 그럼에도 사슴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한다. 김정은은 포병전문가 박정천을 일약 총참모장으로 승진시키고, 트럼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남한을 주무르려는 속셈이다. 속이 타들어 가는 가을 아침이다.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초빙교수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