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미국을 벗겨 먹는 나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은 ‘미국을 가장 많이 이용해 먹는 나라(a major abuser)’ 중 하나다. 중국과 ‘한국이 우리를 오른쪽과 왼쪽에서 벗겨 먹고’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지난해 말 사임한 매티스 전 국방장관의 연설비서관이던 가이 스노드그래스가 지난달 29일에 발간한 ‘홀딩 더 라인(Holding The Line, 전선 사수)’이란 책에서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전했다. 동맹을 가치보다는 돈으로만 평가하는 트럼프 대통령이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안보를 좌지우지할 미국 대통령의 인식이기에 그 파급력을 따져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나라인지 말은 안 하겠는데, 이 위험한 나라를 지키는데 50억 달러(약 6조 원)가 듭니다. 엄청나게 부자고 우리를 좋아하지도 않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믿어집니까?”라고 올해 5월 플로리다주 패너머시티 유세에서 말했다.

그런데 실제로 지난 9월과 10월에 걸쳐 시작된 두 차례의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 총액이 트럼프 대통령이 5월 유세에서 언급했던 금액과 거의 같은 50억 달러(약 5조 8천억 원) 규모라는 윤곽이 드러났다. 올해 방위비가 심리적 저지선이라는 1조 원대를 넘은 1조 389억 원(9억 9천만 달러)이다. 그러나 미국은 원칙을 뒤엎는 사상 초유의 ‘6조 원대, 500%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미국은 문재인 정부가 파기를 선언해 11월 23일 0시에 종료되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하 지소미아)의 파기 재고를 한미일 안보협력과 주한미군의 보호 차원에서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미국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한미동맹 차원에서 대응해야 할 ‘위기 사태의 범위’에 ‘미(美) 유사시(전쟁 시)’를 추가해 한국군의 참전을 요구하고 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6조 원대의 인상 요구에 이어 분쟁지역에 병력까지 파견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이번 주 14일과 15일에 서울에서 한미연례군사협의회(MCM)와 안보협의회(SCM)가 개최된다. 또한 다음 주인 11월 23일 0시에는 한일군사정보보협정(지소미아)의 종료가 결정된다. 최대의 난항을 겪고 있는 방위비 분담금 협상도 진행된다. 모두 한미동맹의 미래를 좌우하고 한반도의 한보지형을 급변시킬 메가톤급 중대 사안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을 중대 사안의 향방에 대해 국민은 깜깜하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가슴이 움츠러들고 불안하다. 설마 했던 지소미아 파기까지 불사하는 정부이기에 더욱 불안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공약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한 바 있으며, 워싱턴에서도 같은 목소리가 솔솔 나오고 있다. 서울에서도 한국대학생진보연합의 대학생들이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을 철회하고 해리스 대사는 이 땅을 떠나라고 외치면서 미 대사관 담을 넘었다.

한국이 미국을 벗겨 먹는 나라라니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 한심하기에 앞서 불안할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설쳐대니 지난주엔 미 국무부의 방위비 분담금, 경제, 외교·안보를 다루는 4인방이 기습적으로 몰려들어 방위비 분담금과 지소미아와 인도 태평양 전략 참여를 압박했다. 원하는 대로 안 될 경우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 카드도 꺼내 들 태세다. 국제정치는 원래 정글의 법칙 위에서 이뤄져 왔다. “거기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국도 없다. 오직 영원한 국가이익이 있을 뿐이다”라는 금언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하는 불안한 아침이다.

김기호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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