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셰일 혁명과 대중동정책

중동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키워드 중 하나가 ‘석유’다. 1970년대 석유를 무기화한 오일쇼크로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했던 주인공이 바로 중동이다. 중동이 기침하면 국제유가가 폭등하고 세계 경제가 감기에 걸린다던 그런 시대였다. 그러나 중동이 그런 호시절을 구가할 수 있는 상황은 이제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난 9월 14일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정유 시설에 가해진 드론 공격으로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루 생산량 570만 배럴이 증발되는 역사상 가장 큰 손실을 보았고 당시 전문가들은 국제유가가 100달러까지 치솟아 세계 경제에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국제유가가 장중 19%까지 치솟았음에도 2주 만에 원유 가격은 모두 원상 복귀됐고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오히려 드론 테러 전보다 낮은 배럴당 52달러까지 내려갔다. 또한 지난 6월 13일 오만해에서 발생한 대형 유조선 두 척에 대한 피격 사건 이후 국제 유가가 한때 급등했으나 국제 유가의 기준이 되는 브렌트유는 2.2% 상승하는데 그치는 등 국제 원유 시장이 차분한 반응을 보였다.

유가가 더 이상 중동 지역 긴장의 척도가 아니라는 사실이 수차례 드러나고 있다. 그 배경에 셰일 혁명이 있고 셰일 혁명을 주도한 미국이 있다. 미국은 작년 초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산유국에 올랐고, 해외 원유 수입량은 2005년에 비해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셰일 혁명으로 인해 작년 미국에서 원유 생산량이 크게 늘어난 점이 최근 중동지역에서 발생한 일련의 긴장 상황으로 인한 공급 우려를 상쇄한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셰일 혁명은 19세기 후반 석유 채굴 기술 혁명 이후 가장 중요한 에너지 개발 기술혁명이다. 전통적 원유는 사암층 특정 구간에 집중적으로 매장된 반면, 셰일 에너지는 셰일층 전 구간에 넓게 분포해 기술력 부족과 낮은 채산성을 이유로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수평시추법과 수압파쇄 공법을 적용한 기술 발전과 비용 감소로 상업성을 띠게 됐고 미국이 가장 먼저 셰일 에너지 플레이어가 됐다. 현재 미국 전체 석유 생산량 증가분의 97%와 전체 원유 생산분의 59%가 셰일 오일로 구성돼 있는데 국제 에너지기구(IEA)는 내년 미국이 67년 만에 에너지 순수입국에서 순수출국으로 돌아서는 것은 물론 셰일 오일 수출로 국제 원유 가격을 좌지우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 최대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미국이 셰일 혁명을 주도하면서 에너지 패권이 이미 중동에서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셰일 혁명 덕에 중동 콤플렉스에서 벗어난 미국이 최근 시리아에서 철군을 감행한 것도 에너지 자립이 낳은 자신감의 발로였다.

“미국은 더 이상 중동의 경찰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과 “에너지 독립뿐 아니라 에너지 지배(energy dominance)를 추구한다”는 공언은 향후 미국의 대중동정책 변화를 예측하게 한다. 미국의 보호 아래 중동의 맹주로 군림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 기업공개(IPO)를 놓고 유가 끌어올리기에 사활을 걸었지만 차분한 원유 시장의 반응을 볼 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대로 사우디가 여전히 유가를 주물 수 있다는 생각이 망상에 가까울 수도 있다. 셰일 혁명이 미국의 중동정책 변화를 견인하고 세계 질서까지 바꿔놓고 있다.

김수완 한국외대 아랍어통번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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