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고향인 내게 동백은 각별하다. 동백꽃은 모두가 몸을 숨기는 추운 겨울에 거의 유일하게 붉게 타오른다. 아름답다기보다 왜 혼자 저리도 붉을까, 어릴 적 궁금증을 자아내곤 했다. 동백꽃은 차로 끓여 먹고 동백나무의 씨는 머릿기름으로 사용했다. 샴푸와 린스가 없던 시절, 머리카락을 빗는 일상은 사투와도 같았다. 동백기름은 뭉친 머릿결을 한결 매끄럽게 풀어주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렇게 생활에 보탬이 됐던 동백은 제주 4ㆍ3의 꽃이 됐다. 핏빛 같은 붉은색과 통꽃이 떨어지는 모습에서 처절하게 죽어간 제주 민중들의 넋을 상징하게 된 것이다. 동백꽃은 이처럼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다 내줬으며, 제주민의 슬픔을 위로해 줬다. 그래서인지 동백은 단순히 곱게 핀 꽃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심연의 존재로 다가온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매니페스토운동의 상징 꽃도 ‘동백’이다. ‘힘없고 빽없는’ 을들을 위한 운동을 하겠다는 다짐이었다. 압축 산업화 과정에서 희생을 강요받았던, 가족과 국가를 위해 수많은 밤을 울다 지쳐서 빨갛게 멍이 들었을 수많은 동백들을 위한 약속이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그들의 희생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준 그들이 최소한 힘들지 않게 살아야 정의로운 사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지난주에 종영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생에게 모든 것을 내줬던,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외로워했던 손담비(향미)의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그의 극 중 대사가 내게는 가장 붉게 다가왔다.
나무에서 핀 동백꽃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자신의 모가지를 통째로 뚝 꺾어 떨어진다. 이 땅의 수많은 동백꽃들도 가장 눈부신 순간에 나무를 포기했다. 하지만 꽃은 지지 않았다. 통째로 땅에 떨어진 꽃은 산산이 부서지지 않고 다시 핀다. 오히려 공중에 있을 때보다 더 절정을 이루며 사람들의 마음에도 붉게 피어오른다. 이 땅의 수많은 동백꽃들이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차별에 맞서고 소외된 이웃과 연대하며 세상에 빛이 돼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3050클럽’에 가입했다. 일곱 번째로 인구 5천만 명 이상 가운데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인 나라가 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다. 차별과 편견이 판을 치고 있다. 승자독식, 약육강식의 소수를 위한 논리만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 땅의 수많은 동백꽃들에게 여전히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또다시 그들에게 가진 모든 것을 내놓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드라마에서처럼 동백으로 태어난 것이 ‘팔자’ 아니겠느냐는 말만 반복한다.
4차 산업혁명, 노동절약형 기술진보에 접어들고 있다. 팍팍하게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더 혹독한 겨울이 올 것이라는 섬뜩한 예고다. 생활고에 지친 일가족 동반자살 사건이 이번 달 들어서 벌써 3번째다. 국회의원 선거는 142일 앞으로 다가왔다. 국회의원이 되려 한다면, 먼저 자신의 가슴에 동백꽃이 붉게 피었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해인 수녀는 바람 부는 겨울에도 따뜻하게 웃어주고, 마음 쓸쓸한 날은 곁에 와서 기쁨의 불을 켜주는 동백꽃 같은 삶을 살고 싶다 했다. 이번에는 우리 모두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옹산 사람들처럼 연대 가슴에서 붉게 피는 한 송이 동백이 돼 보는 것은 어떨까.
오현순 매니페스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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