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는 1596년에 외아들 햄릿을 잃었다. ‘리어왕’ 5막에서 숨이 끊긴 딸 코델리아를 안고 울부짖던 늙은 리어왕은 셰익스피어가 느꼈던 고통과 상실이 그대로 전이된 ‘알터 에고(Alter ego)’였다. 정지용부터 박완서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가 피로 쓰듯 참척의 고통으로 글을 써 내려갔다. 잠든 듯 숨진 어린 자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 심정은, 화장터에서 태우고 남은 조그마하고 어린 뼈를 받아든 부모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한창 파릇했던 자식이 이제는 절대 돌아오지 않을 빈방에서, 남겨놓은 유품에 떨어뜨리는 눈물은 도대체 얼마나 쓰라린 것인가.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얼마 전 펴낸 책에서 ‘타인의 슬픔을 완전하게 공감하기란 불가능하지만 타인의 슬픔을 공부함으로써 거의 내 것처럼 이해하게 되는 것’이라는 취지의 문장을 남겼다. 공감능력은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도 있지만 이를 학습함으로써 더 발달하고 확장된다는 것이다. 자식을 잃지 않은 사람은 자식을 잃은 사람에게 온전히 공감할 수 없으나 타자적 슬픔에 대해 공부함으로써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야만이 타자의 희생과 고통 위에서 성립되는 것이라면 많은 이가 꿈꾸는 유토피아, 혹은 고도화된 문명사회는 타자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공감에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어린이 교통안전을 강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통과되었다. 지난 3년간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천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치거나 죽는 상황에서 사실상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눈물 어린 노력이 기폭제가 된 것으로, 늦은 감은 있으나 이제라도 통과돼 다행인 셈이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법규만 정확하게 잘 지키면 일부 운전자가 오해하는 것처럼 과잉처벌의 우려는 거의 없으며 운전자 위주의 교통인식을 보행자 위주의 인식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어려운 과정도 있겠지만 CCTV 설치 등에 필요한 예산은 여럿이 합심해 새로 만들면 된다. 다만 병행돼야 할 것이 있다. 가령 어린이보호구역 내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한 적극적 단속과 함께 운전자 인식전환이다. 어린이보호구역 내 불법 주정차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분명한 가해행위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불법 주정차 차량에 가려 어린이는 운행차량을 보지 못한 채 길을 건너고 운행자는 갑자기 튀어나오는 어린이를 보지 못할 수 있다.
어린이, 싱그러운 어린 생명을 대표하는 색은 녹색이다. 녹색은 치유와 안전, 나아가 성스러운 영혼을 상징한다. 우리나라 전통 혼례복의 주 색상이 초록색이라거나 사막이 많은 불모지 아프리카의 각 나라 국기에 역설적으로 녹색이 많다는 사실은 인상적이다. 전국 각지에서 어린이 교통안전을 위해 봉사하는 초등학생 학부모들의 자발적 모임을 ‘녹색어머니연합회’라고 하는데, 이분들은 초등학교 등하굣길에서부터 구석진 도로에 이르기까지 이른 새벽이나 궂은 날씨에도 아무런 대가 없이 헌신하는 엄마들이다. 누구보다도 녹색의 의미를 잘 보여주시는 훌륭한 분들이다.
문명사회는 타인의 고통과 슬픔에 공감하는 사회이며 타인의 슬픔과 고통을 경감시키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녹색사회이다. 우리 사회는 과연 무엇을 바꿈으로써 이러한 녹색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김성훈 손해보험협회 중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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