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노벨위원회는 201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더 뒤플로 매사추세츠주공과대학(MIT) 교수 등 경제학자 3명을 선정했다. 배너지와 뒤플로는 부부 학자로 부부가 공동으로 같은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자연과학·의학에서 활용되는 무작위 통제 실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s)을 경제학적 관점으로 빈곤문제에 도입했다.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나눠 무작위 실험을 하고 그에 입각한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개발도상국의 빈곤 퇴치와 같은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했다.
그들의 새로운 실험 기반 접근법은 불과 20년 만에 개발경제학을 완전히 변화시켰다. 무엇이 좋은 정책이고 무엇이 좋지 않은 정책인지 각종 연구 결과를 통해 확인할 수 있고 좋은 정책을 도입하면 빈곤 퇴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값싼 곡물 대신 영양제·구충제 한 알을 주거나 쓸데없이 많은 비용이 드는 ‘치료’보단 ‘예방’을 위해 모기장을 공급해 말라리아 발병률을 낮추는 식이다. ‘모든 문제에는 저마다 고유의 해답이 있다’며 무조건 ‘원조금’을 주기보다 실질적인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시도가 인천에서 일어나고 있다. 허인환 동구청장은 전국 최초로 현재 관내 1년 이상 주민등록을 두고 거주한 만65세 이상 주민이면 누구나 가까운 위탁의료기관에 방문해 무료로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시행했다. 또 인천 이음카드의 폭발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인천에서 유일하게 지류형 지역화폐를 고집하고 있다. 최근에는 만75세 이상 어르신 대상으로 목욕탕, 이·미용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전용상품권 지급도 추진한다고 한다.
좋은 정책, 바람직한 방향이다. 동구는 만65세 노인 비율이 21.5%로 인천에서 강화군 다음으로 고령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다. 대상포진 예방접종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노인치료비와 사회적 비용을 사전에 방지하거나 크게 줄일 수 있다. 이음카드를 사용하는데 있어 디지털 디바이스 소외계층인 노인들이 많고 단말기 보급률이 30%에 불과한 동구 현대시장에선 상품권 사용이 훨씬 편리하다.
어르신 품위유지 상품권은 노인뿐만 아니라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경제학자들 역시 상품권으로 지급하는 보조금 정책이 명목상의 성과를 뛰어 넘는다고 조언한다. 배너지와 뒤플로는 기존 규칙을 약간 바꾸거나 넛지(nudge) 전략만으로도 강력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 국가들은 구체적인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여전히 획일적이고 직접 지원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렇다 보니 좋은 의도에서 출발했을지라도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종종 나쁜 정책이 되기도 한다. 의도가 훌륭할지라도 모든 정책이 의도한 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인식을 전환할 때다. 무분별한 퍼주기식 정책은 더 이상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대중의 인기를 끌기 위한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이 아니라 각 지역 사정에 맞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맞춤형 정책’을 개발하고 추진해야 한다. 인천 동구의 정책이 주목받는 이유다.
이도형 홍익정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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