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기생인(寄生人), 사기공화국에서 살아가기

영화 ‘기생충’의 스크린에는 빛이 넘친다. 한국영화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비롯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까지 수상한 영화 기생충은 대한민국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성공한 사업가인 박사장의 가족은 대저택의 통유리창을 통해, 전원 백수인 기택네 가족은 반지하 방의 작은 창문을 통해 각각 다른 빛을 본다. 빛을 누리는 권리마저도 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현실 속에서, 기택네 가족들은 신분을 위장한 채 숙주인 박사장네 집에 기생하고 끝없이 박사장을 ‘리스펙’하며 그러한 삶이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영화는 판타지가 아닌 현실을 보여준다. 박사장은 죽고 기택네 가족은 뿔뿔이 흩어진다. 하지만 현실 속 숙주들은 박사장과 달리 그리 부유하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참담하다. ‘PARASITE(기생충)’의 그리스 어원은 ‘옆에서 음식을 빼앗아 먹는 것’이라 한다. 자신의 노력 없이 평범한 누군가의 부를 가져가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것, 이미 대한민국은 기생충의 천국이다. 세계보건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2013년 기준 OECD 37개 회원국 중 사기 범죄율 1위를 기록했고, 형사정책연구원의 ‘2016 전국범죄피해조사’ 에서는 14세 이상 국민 100명 중 1명이 사기피해를 입었으며, 2017년 총 24만1천642건의 사기범죄로 18조1천683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명실상부한 사기공화국이다.

기부를 빙자해 거액을 가로챈 어금니 아빠 사건, 수백명의 피해자를 양산한 수원 전세보증금 500억 먹튀사건, 게임기 투자를 하면 매달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는 3천800억원대 다단계사건, 금괴를 가득 실은 채 울릉도 해저에 가라앉은 러시아 보물선을 발견했다며 투자를 유치한 ‘돈스코이호’ 사건 등 대한민국을 뒤흔든 굵직한 사기범죄부터 차용사기, 결혼사기, 보이스피싱 등 사기의 종류와 규모도 다양하다.

때론 학력과 경력을 위조하고, 때론 자산가를 사칭해 타인의 재물을 탐하는 현실속 기생충의 결말은 영화와 크게 다르다. 오히려 숙주인 피해자를 파탄내고 자신은 빼돌린 재산으로 안락한 여생을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현재의 법령이 가해자의 형사처벌에만 집중할 뿐 피해자의 피해회복에 무관심한 탓에 피해자는 금전적 손해를 보상받을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또한 사기죄의 법정형은 10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이고, 법원의 양형 기준상 일반사기(1억원 이하)의 기본 형량은 징역 6개월에서 1년 6개월으로 형량이 낮다보니, 형사처벌을 감수하고라도 막대한 범죄수익을 챙기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1천300억대 투자사기를 벌인 이숨투자자문 대표가 고작 1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피해자 3만여명에 4조원의 피해를 낸 유사수신 사기의 주범인 조희팔이 중국으로 밀항해 호화 생활을 즐기다 사망한 것을 보면, 오히려 한탕주의 범죄를 조장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영화속 박사장네 냉장고에는 워낙 많은 양의 음식이 있어서인지, 우유 한통, 소시지 한통 사라져도 표시조차 안 난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들의 냉장고는 당장의 생계를 위해 채워진다. 음식이 사라지면 굶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생충을 박멸할 구충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승기 대표변호사(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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