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행복은 마스크 순이 아니잖아요

김규태 경제부장 kkt@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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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출근길 약국 앞에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수십명의 시민들이 3월의 마지막 꽃샘추위에도 불구하고 줄서기에 여념이 없다. 마스크를 살 수 있다는 희망 하나만 가지고 말이다. 2020년을 살고 있는 우리의 슬픈 현실이어서 더 가슴이 아프다.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고, 자율 주행차가 도로를 활보하는 첨단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마스크 한장을 구하기 위해 벌이는 촌극 치고는 너무 뼈아프고 낯 뜨거운 삶의 현장이 아닌가 싶다. 어디서부터 실타래가 잘못 꼬인 것일까.

요즘 우스갯소리 가운데 하나로 “건물주 보다 마스크를 많이 보유한 사람이 갑(甲)”이라는 말이 나돈다. 코로나19가 바꾼 일상에서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닌, 마스크 순이 되어 버린 것이다.

곧 종식될 것이라는 섣부른 판단을 뒤로 한 채 세계보건기구(WHO)는 결국 코로나 사태에 대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포했다. 팬데믹은 일반적으로 새로운 질병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미 코로나19는 이 기준에 들어맞는다는 설명과 함께 말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독일의 옌스 슈판 보건부 장관이 밝힌 점이다. 그는 연방 하원에서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가 팬데믹이 됐다”면서 “분명한 것은 아직 정점에 이르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사태는 ‘심각성의 최대치’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우리 정부가 내놓은 마스크 정책은 한탄스럽기 그지 없다. 공적 물량 투입을 출생연도로 끊어 배급(?)하는 것도 모자라 1인당 2장만 판다는 것이 21세기 자유 대한민국에서 가능하다니 정말 황당할 뿐이다. 사실상 일회용 마스크 2장으로 일주일을 버티라는 것 아닌가. 일회용 마스크는 빨아서 말렸을 때 60% 정도의 효과 밖에 볼 수 없다는 실험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증명됐는데도 말이다.

현재까지의 감염병 대책이 종합적으로 부실했다면 빨리 인정하자. 그리고 집단 지성을 가동해 대한민국 형 새로운 감염병 대처 능력을 메뉴얼화 하는 것도 늦지 않았다고 판단된다. 앞서 언급했듯이 팬데믹이 된 코로나19의 최대치를 아직 경험하지 못했기에 더 큰 재난으로 확산될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 국가 컨트롤타워의 책임이자 의무다.

하염없이 출생연도만 기억한 채 나를 위한 그날(요일)을 기다리는 것은 궁여지책(窮餘之策, 막다른 골목에서 그 국면을 타개하려고 생각다 못해 짜낸 꾀)일 뿐이다. 그 마저도 정해진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리는 시민들이 더 많다. 이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국가 체계다. 확산일로가 된 대한민국에서 국민들이 숨이라도 제대로 쉴 수 있는 자유를 되찾아 주는 방식에서 이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감기>, <컨테이전(Contagion)> 등 국내외 바이러스 감염 관련 영화들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영화처럼 아주 드라마틱 하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사스나 메르스 사태와는 다른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더 큰 재앙은 준비되지 않을 때 ‘카운트 어택’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시장경제 논리에 맞는 방식에서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우리의 성장 근간인 시장경제를 무시한다면, 공급자ㆍ수요자 어느 쪽도 수혜를 볼 수 없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한 결말이다.

늦지 않았다. 어떠한 난관에서도 더 희망찬 대한민국을 만들어왔던 저력이 우리에겐 있다. 행복이 마스크 순이 되어선 안된다. 국민들 모두가 행복의 무게감을 스스로 판단하고 느낄 수 있는 자유, 그것이 행복의 우선 순위가 돼야 하지 않을까.

김규태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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