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아침] 명필

산과 들에 펼쳐진 바탕체

신명조체로 활기를 넣다가

가끔은 웃자란체도 나온다

고개 내미는 나물은 돋음체

필체를 남발하는 잡초들은 필기체

이파리는 바닥에 그늘체를 쓴다

과수원은 불그레한 복숭아체를 즐기지만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다 지워진다

둘레길 이슬 젖은 패랭이는 함초롬체

갈대밭은 어느새 흔들체로 바람결을 탄다

단풍은 방화체를 선호하고 온몸을 태우지만

흘림체를 쓴 담쟁이가 단연 명필이다

글씨체를 바꾸고 흙으로 돌아가려는 계절

전나무의 마지막 뒷모습은

고색창연체 속에서도 완벽한 고딕체이다

나는 주름체를 다양하게 늘려간다

바람의 서법이 흔들린다

임향자

충남 보령 출생. 2016년『창작 21』신인상. 창작21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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