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폭력 끝나지 않는 이유)
“만약 악마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인간이 악마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가 인간의 순수성과 악마성이라는 양극단의 딜레마에서 던진 해답이다.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죄의 영역은 법의 경계까지인가, 아니면 인간의 사유와 욕망의 영역까지도 죄가 될 수 있는가.
필자는 최근 전국민적인 분노를 일으킨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보며 법은 과연 인간을 지킬 수 있을까 하는 근본적인 회의감과 함께 법조인으로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2018년 하반기부터 현재까지 미성년자를 포함한 약 80명의 피해자가 N번방 운영자들의 먹잇감이 되었고, 이를 즐기기 위해 최소 수만명에서 최대 20만명의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냈다. 그들은 다소 수위가 높은 게시물을 올리는 미성년자들을 선별한 후, 경찰 사칭하는 등의 방법으로 신상정보를 알아냈고, 이를 빌미로 피해자들을 협박해 ‘노예’로 전락시킨 후 각종 성폭력 영상을 N번방에 공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범죄행각을 살펴보면 차마 글로 옮기기가 역겨울 정도니,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난도질당하는 기분이다.
디지털 성폭력과의 전쟁은 계속됐다. 2019년 오랜 기간 웹하드를 통해 불법영상물을 유통하며 거대한 부를 쌓아오던 양진호 회장의 구속을 시작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단톡방에서 성관계 영상을 공개하며 성희롱 발언을 일삼던 유명연예인들 역시 법의 단죄를 받았다.
하지만 ‘수요가 있다면 공급이 있다’는 경제논리에 따라, 자극적인 불법음란물을 갈구하는 충성고객들의 존재는 더욱 교묘하고 치밀한 형태의 ‘N번방’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현재 국민 여론은 N번방에 있던 관전자들 역시 공범자로 강력히 처벌해주기를 원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아동·청소년에대한성보호에관한법률은 아동·청소년음란물을 ‘소지’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있지만, 단순시청자의 경우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고 있다. 결국, 보안성이 뛰어난 텔레그램 방에서 사진이나 영상이 오간 흔적을 찾지 못한다면, ‘소지’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소지의 흔적을 찾는다 해도 이를 배포했다는 증거가 없는 한 고작 수백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최근 국회에서는 불법촬영물을 휴대폰에 다운로드만 해도 처벌하는 것을 포함해 디지털 성폭력을 엄벌에 처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미성년자에 대한 외설사진이나 그에 준하는 영상촬영에 대해서는 그 제작부터 소비까지 모든 가담자를 중하게 처벌하는 영국의 어린이보호법에 비하면 한참 뒤처진 입법으로 보인다.
분명 ‘N번방’의 운영자와 그들의 주요 하수인들은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시민의 얼굴을 한 불특정 다수의 충성고객은 다시 일상을 살아갈 것이고, 법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드는 한도에서 자신의 악마성을 표출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있는 한 디지털 성폭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소라넷과 음란물웹하드, 정준영 단톡방 그리고 지금은 ‘N번방’의 모습으로 그 생명을 이어가듯….
이승기 대표변호사(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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