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용서와 선행 감사

코로나19에 맞서고자 세계 각국이 2차 세계대전과 같은 전열 정비에 나섰다. 이러한 재앙 앞에 사람들은 자꾸 누군가를 탓하기에 연연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모두 성찰이 필요한 시대이다. 이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에 용서하는 말이 맴돈다. 용서의 마음을 품지 않으면 성찰도 되지 않고 늘 남 탓으로 돌리면서 자기 위안을 삼으며 살려고 한다. 만약 사람과 빈번한 갈등이 일어나는 것도 내 삶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못해서 아닐까? 자기완성을 위해서, 아니면 종교인으로 구원과 해탈을 바란다면, 우리 안에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용서가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을까?

내 안의 에고의 각본을 참 나의 양심각본으로 바꾸는 것이다. 남 탓하는 마음은 사실 내 안의 거짓 자아인 에고가 만들어 놓은 각본일 뿐이다. 이 거짓 자아의 마음을 우리 안에 본성인 참 나의 양심 각본으로 바꾸는 것이다. 에고의 정체는 탐욕이다. 이것은 ‘탐욕의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생각은 에너지고 에너지는 에너지를 불러온다. 탐욕은 탐욕을 불러오기 때문에 이 탐욕을 ‘참 나의 양심기운’으로 교체 하는 것이다. 에고의 속성인 탐욕을 우리 안에 참 나인 양심의 각본으로 바꾸려는 방법이 용서다. 참 나인 양심의 힘이 강해지면 에고가 사라진다. 내 안의 에고가 불러온 지금의 상황, 고통의 사태에서 우리가 용서를 어떻게 할까? 감사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터널에서 빠져나올 텐데 나오고 나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감사해 보자. 미리 감사하는 것을 선행감사라 한다. 그런데 그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래서 수련과 훈련이 필요하다. 이 고통 앞에 두려움을 느낄 때 그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용서해야 한다. 용서 수련법이다. 나한테 주어진 ‘부정적 상황, 두려움, 걱정’이게 진짜인가 내 상상인가를 묻는다. 답은 당연히 가짜인 상상이다. 거짓 에고의 놀음이다.

두 번째는 이 상상이 나에게 영향을 줄 수 있나 없나를 묻는다. 답은 당연히 ‘줄 수 없다’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사랑 안에서 감사하고 용서하게 평화를 누린다고 확언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앞에 고통스러운 그 상황이나, 코로나 사태로 매스컴으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용서하고 축복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코로나 19 두려움 앞에 ‘용서 선행감사’ 이 어려움을 헤쳐나가고 더 멋진 성장된 모습으로 우뚝 서자.

“사랑이 너의 안전이다. 두려움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과 동일시하라. 그러면 너는 안전하다. 사랑과 동일시하라. 그러면 너는 집에 있다. 사랑과 동일시하라. 그리하여 너 자신을 발견하라.”

김옥성 교육희망네트워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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