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진정 ‘희망가’를 부르고 싶다

문병란 시인의 ‘희망가’란 시가 있다. “얼음장 밑에서도 고기는 헤엄을 치고 눈보라 속에서도 매화는 꽃망울을 튼다 ····· 한 고비 지나면 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 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얼마 전 ‘미스터트롯’에서 소년 가수 정동원이 불렀던 ‘희망가’도 있다. “이 풍진(風塵: 바람에 날리는 티끌)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은 무엇이냐.” 원곡은 1850년 영국 춤곡을 바탕으로 미국인 제레미아 잉걸스의 찬송 모음집에 수록된 찬송가다. 1910년에 일본에 전래돼 국내에선 1921년에 발표됐다. 곡명은 ‘희망가’인데 내용은 절망이다. 일제 강점기의 슬픈 민중가요다. 문병란 시인의 ‘희망가’와는 완전 분위기가 다르다.

며칠 후면 4·15 총선이다. 국민은 총선 결과보다 총선 이후에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가 될지 불안해하고 있다. 여야가 추구하는 나라의 정체성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2022년 대통령 선거까지 국론 분열과 갈등으로 피 튀기는 시간을 보낼 것 같다. 공포와 고통과 증오의 시간이다. 게다가 코로나는 전 세계를 과거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변화를 예고한다. 정부의 힘은 더 강해지고 일자리는 감소하며 국제질서 쇠락에도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개인의 일상과 경제와 사회가 송두리째 흔들릴 것이다.

코로나는 이미 ‘전염병 시대의 도래’라는 무서운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과학을 무시한 정치가 몰고 온 재앙이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의 선택은 늘 위대하다’고 떠들지만, 국민의 잘못된 선택으로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도 많다. 우리 국민은 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 필요한 선택을 해왔다. 그동안의 국정은 이념 우선, 코드 인사, 편 가르기, 국가 주도형 경제로 진행됐다. 이 방식이 좋으면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지금 좌파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 우파는 국민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현상은 실체를 검증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문 정권의 3년이 이번 총선의 결정 짓는 잣대다. 좌파든 우파든 매력을 상실한 세력에 국민은 염증을 내고 있다.

우선 당장 나와 내 가족의 안위가 급하다.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지난 100년의 역사다. 누가 100년의 역사를 만들었는가? 일제 강점기 때 독립운동가들이었고 6·25전쟁을 치르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경제 대국을 만든 국민들이었다. 자유민주주의는 우리에게 지고지순(至高至純)의 가치이며 우리가 지켜야 할 절대 명제다. 우리의 잘못으로 단절을 초래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헌정사는 자유, 인권, 법치의 확장 과정이었다. 선거를 통해 수차례 정권교체를 이룬 자유민주제도의 정착 과정이었다. 역대 선거 결과는 정권의 오만과 독선이 도를 넘으면 철퇴를 내렸고, 야당의 무능과 비호감에도 예외가 없었다. 야당은 이번 총선에서 지금 정권의 무능과 위선을 심판해주길 바라겠지만 과거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의 미래다. 자유와 인권과 시장경제를 지킬 수 있는 체제를 선택해야 한다.

시경(詩經)에 나라는 망했는데 성터에 기장 이삭만 늘어져 있는 모습을 보며 탄식한 시가 있다. “나를 아는 사람은 나에게 우울하냐고 묻고, 나를 모르는 사람은 나에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정녕 ‘희망가’를 부를 수 있을까?

이인재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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