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정단상] 가지 않은 길,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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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지역, 나라와 나라 간에 거대한 불통의 장벽이 생기고 지구촌을 연결하던 항공편마저 끊겼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로 인류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길을 걷고 있다.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시구(詩句)처럼 낭만적인 그런 길은 결코 아니었다. 선진국이라 자신하던 미국, 유럽과 일본마저 길을 잃고 결국 참담히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들이 자랑하던 생명과학 등 선진 의료시스템도 해결해주지 못했다. 글로벌 시대, 모든 것을 정복한 듯한 오만에 깊은 상처만 남겨줬다.

‘가지 않은 길’을 무소의 뿔처럼 나아간 고양시

먼 나라 이야기 같던 코로나19 국내 세 번째 확진자가 지구촌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경기도 고양시에서 발생한 것은 지난 1월 26일 설연휴 중이었다. 확진자 발생 이튿날부터 고양시는 재난대책본부를 꾸려 위기상황에 맞섰다. 전국 최초였다. 마스크와 손세정제 등 방역물품을 최대한 구입하고 비축했다. 마스크 70여만장, 손세정제, 열감지기, 소독용품…. 코로나19와의 전쟁에 쓸 실탄들이었다. 어린이집, 유치원, 병원, 노인복지센터 등 감염병 취약 계층을 위주로 마스크를 지원하고 지하철역과 다중이용시설 등에서 시민들에게 나눠줬다. 재난대책본부에서의 모든 보고와 결정 등 그날그날 매일 달라지는 코로나19 전쟁 상황을 속기사를 참여시켜 일지로 남겼다. 차후 그놈과 유사한 적과의 전쟁에 쓸 매뉴얼을 만들겠다는 각오였다. 메르스 사태 당시를 기억해내고 상황에 맞는 전술들을 펼쳐갔다. 어느 순간 그놈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공포로 골목상권은 스러져갔고 소상공인들은 비명을 질렀다. 3000여 공직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작전을 투트랙으로 변경했다. “지역 경제도 살려야 한다.” 예산 조기집행, 소상공인특례보증 상향, 고양페이 10% 인센티브제 연장, 밸런타인데이서 화이트데이까지 꽃선물 하기, 단기일자리 창출로 방역반 꾸리기, 골목상권 살리기…. 우리는 코로나19와의 전쟁, 아니 그 가지 않은 길의 한쪽 길을 무소의 뿔처럼 묵묵히 걸어갔다. 어느 날부터인가 익명의 기부물품이 밀려들어왔다. 시민과 기업인들은 의료진을 위로 격려하는 손편지와 생수, 캔커피 등을 보내왔다. 성금도 물론 있었다. 그것은 응원군이자 백척간두에 선 전선에 도착한 승리의 지원군이었다.

세계인을 감동시킨 ‘고양안심카(Car)선별진료소’

고양시민을 넘어 온 국민의 합심으로 코로나19가 잠잠해지던 2월 중순 31번 확진자로부터 시작된 대구발 신천지 집단감염이라는 또다른 변수로 대한민국 전체가 혼돈의 늪에 빠졌을 때 고양시민과 공직자들의 아이디어와 열정은 다시 빛을 발했다. 고양시 내 대형병원과 3개 보건소 등 7곳의 비좁고 불안스러운 선별진료소를 개량하고 차를 탄 채로 코로나19 검진을 받는 안심카(Car) 선별진료소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것도 지구촌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의료계의 아이디어와 공직자들의 신속한 결정으로 1500만원이라는 작은 예산을 투입해 단 하루만에 탄생시켰다. 곧 CNN, BBC, VOA, 르피가로, 뉴욕타임즈 등 지구촌 유수 언론은 전 세계로 3배 이상 빠른 검진, 안전성과 효율성을 알렸다. CNN의 영상 조회수는 지난 7일 현재 3561만여회를 기록했다. 정부는 고양시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를 국가 표준형으로 지정해 전국 지자체에 설치를 권고했고 세계보건기구도 국제표준형으로 선정하는 쾌거를 이뤘다.

포스트 코로나19… 경제살리기 첫 걸음은 사랑과 배려

고양시는 마스크 판매 실명제, 위기극복지원금 지급, 자체 일자리기금 100억원을 투입한 고양알바 2000 모집, 해외입국자 선별 진료소 설치와 입국자 가족 감염방지를 위한 안심숙소를 가장 먼저 제안해 실행했다. 감염증 조기 종식과 경제회복을 위한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드디어 국내 감염자 ‘0’라는 뉴스가 들려오고 있다. 이는 총선과 5월 황금연휴를 거치면서도 지켜낸 국민들의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의 승리였다. 모든 국민은 이제 한 목소리로 경제 살리기를 외치고 있다. 미래 경제동력을 되살릴 불씨와 마중물은 무엇일까. 코로나19로 취소·연기된 봄축제와 행사들로 피폐한 경제 살리기의 시작은 ‘사랑과 배려’라고 확신한다. 일례로 고양시는 음식점과 카페 등의 실내 테이블을 밖으로 빼 거리두기를 실천하면서 영업을 되살리는 식품접객업소 옥외영업 한시 허용을 도입했다. 바로 발코니 영업이다. 발코니영업은 안전과 소비 진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고육책이다. 이를 위해서는 업주는 소음, 냄새, 안전 민원 발생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고 시민들은 배려의 마음으로 그들을 응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19를 향한 첫 걸음은 거대 경제이론이나 구호가 아니다. 막연한 공포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암흑의 터널을 함께 탈출한 배려와 사랑의 힘이다. 전국의 코로나19 격리병동서 사투를 벌이고 이도 모자라 대구로 달려간 의료진, 지역방역과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 배달과 안녕을 체크한 자원봉사자, 손편지로 그들을 격려 위로한 국민 영웅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수천년 위기극복으로 점철된 슬픈 역사를 이제는 우리 민족의 혼불로 승화시킬 때다. 무소의 뿔처럼 걸어온 그 끈기와 인내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이재준 고양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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