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 전, 이천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화염과 유독가스가 앗아간 노동자들의 목숨, 그들의 안전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며 마음 깊이 용서를 빌었다. 조문을 마치는 심정은 비통했다.
이천 물류창고에서 지금까지 밝혀진 당시 현장 상황은 여러 하청업체가 한꺼번에 우레탄 폼 시공과 용접 작업 등을 동시에 진행했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해양연구원 노조위원장 시절, 지역사회 봉사의 일환으로 노숙자 무료급식 시설을 조성하는 데 함께했다. 그때 용접이며 미장 등 건설 현장의 일을 배웠다. 짧은 경험이었지만, 서로 다른 분야의 작업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몸소 체험한 바 있다.
이번 화재 사고 원인도 안전관리 책임자도 없이 서로 분야가 다른 작업자가 각자 맡은 분야를 완수하는 데 여념이 없다 보니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희생자 대부분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이라는 점에서 더욱 가슴 아프다.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님의 희생을 계기로 지난 1월 새로운 ‘산업안전보건법’이 시행됐다. 하지만 법안 추진 과정에서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겼다. 공기 단축이나 비용 절감에 시달리는 하청, 재하청 구조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화재사고 현장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여섯 차례나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심사해 세 번 이상 ‘화재(폭발) 위험 주의’를 지적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조건부 적정’ 통보를 받았다니, 현장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 여전함을 보였다.
유사한 사고가 되풀이된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대책, 즉 법과 제도의 정비가 시급함을 새삼 절감한다. 지난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40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던 사례를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 사업주가 받은 처벌은 벌금 2천만 원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강력한 법 추진이 국회에서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7년 4월에 고 노회찬 국회의원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었다. 이천 물류창고 화재와 같은 사고가 났을 때, 경영자ㆍ원청 기업ㆍ공무원까지 엄격한 관리감독 책임을 묻게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3년째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우선적으로 제정해야 할 법이라고 생각한다. 경기도의회에서도 이 법의 제정을 촉구하면서 노동 현장의 재난재해 발생 시 책임을 강화할 수 있는 조례 제정이 지방의회 차원에서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다.
경기지방고용노동청 신설도 급선무다. 현재 중부지방고용노동청이 경기ㆍ인천ㆍ강원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데, 이는 무리라고 본다. 경기도 사업체 수는 90만8천여 개이며, 종사자 수는 516만여 명으로 전국의 23.3%를 차지한다. 지청 단위에서 행정ㆍ민원을 도맡아 처리하기는 벅찰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동절에 밝힌 메시지처럼 “노동자가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려면 노동자 인권부터 보장해야 한다. 인권은 건강이고 안전이다. 우리들 생각부터 ‘사람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법과 제도가 바뀌고, 행동이 바뀐다. 그래야 더는 노동자가 허무한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고, 그래야 노동자 주류 세상이 될 수 있다.
송한준 경기도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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