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미국이나 유럽처럼 근사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다. 부유하고 여유 있어 보이는 앞선 나라가 우리의 목표였다. 한국민들은 꿈만 꾸지 않았다. 어느 나라보다 힘차게 전진하였고 어느 국민보다 열심히 뛰었다. 꿈꾸던 선진국이 이제 무지개 너머가 아니라 집 근처 공원 앞에 와 있다.
경제력은 이제 G7에 근접해 있다. 주변국으로 인해 표시가 잘 나지 않지만 군사력도 대단하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국의 선진 이미지가 세계 도처로 확산하고 있다. 개혁과 혁신, 변화와 변혁을 한국보다 더 강렬하게 추구해 온 나라가 있을까.
선진사회라고 말할 때 몇 가지 기준이 있다. 첫째는 선도하는 사회다. 구미 주요국과 이웃나라를 따라잡기 위해 진력해온 한국은 이제 앞서가고 있다. 전면적인 국민의료보험과 5G 시스템으로 인한 효율적인 의료체계로 가장 안전하고 제일 살기 좋은 나라로 되어 있다. 한국만의 의료복지가 돋보이면서 급기야 미국과 유럽에서 한국을 선망하는 사람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도 급격히 고양되고 있다.
두 번째는 민도이다. 지하철에서 두고 내린 물건은 분실물 센터에서 찾으면 될 정도로 시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다. 지난 70여 년 우리는 앞서간 주요국들을 보고 배우는데 나태하지 않았다. 프랑스의 관용 정신도 보았고, 미국의 창의성과 도전정신도 익혔다. 독일인들의 차분함도 감지하였고, 독서율 1위 국가인 스웨덴의 공동체 우선주의 정신도 살폈다.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에서의 질서정연함은 이제 한국인의 일상의 모습이 되었다. 위난의 시기에 자원봉사와 이타적인 모습은 우리의 자부심이 되었다. 고무적이게도,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한국의 청소년들은 학원이나 사교육에 얽매이지 않고 온라인과 개인의 능력에 맞게 맞춤교육으로 발전하고 있다. 2030년이 도래하기 전에 대한민국은 독서율 1위 국가도 될 수 있다. 책 읽는 대한민국은 민도를 높여주는 첩경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순화된 언어사용이다. 후진 사회일수록 언어가 거칠다. 말이 거칠면 생각과 행동도 거칠어진다. 언어는 생각과 인격을 드러내고, 시대상과 문화를 반영한다. 선진 사회에서 거친 언어를 사용할 때는 저절로 수치심이 드는 불문율이 조성된다. 사회를 자정시키는 언어가 1등 시민들의 사회로 나가는 핵심의 하나다. 일상에서 싸우고 다투는 언어보다 서로 격려하고 위무하는 언어가 선진 문턱을 넘는 필수품이다.
어휘선택도 중요하다. 외국어를 구사할 때도 그렇고, 한국어를 말할 때는 더욱 중요하다. 한글의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외국인들이 좋아하고 드라마나 K-pop을 통해 한국어를 열심히 배운다. 추석이나 설날에 외국인 노래 경연대회를 보면 우리보다 언어를 더 멋지게 구사한다. 공원에서, 전철역에서 친절하게 안내하는 시민들도 많아졌다. 온기(溫氣)가 배인 언어와 함께 어느새 한국 사회에도 보라색 라벤더 향기처럼 화사한 마음의 여유가 채워졌다.
네 번째는 안전 민감성이다. 천재지변은 피할 수 없지만 인재(人災)는 피할 수 있고 줄일 수 있다. 한국은 과거의 전철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고민해 왔다. 어떤 나라이건 재난으로, 재해로 상처받아 왔다. 선진국은 상대적으로 인재가 적고, 평소 섬세하게 살피고 관리하는 습관이 있다. 한국도 선진 모델에 근접해 간다. 약간의 세심한 주의가 더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안전 행정을 위해서는 타성에서 벗어나면 좋다. 안전을 담당하는 공무원이나 그 분야의 전문가는 철저한 안전규칙과 점검사항을 직업의식을 가지고 투철하게 따라야 한다. 적당주의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 안전 선진화의 요체다.
미국은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초강대국이지만, 코로나 사태에서 보듯이 선진사회라고 하기에는 어폐(語弊)가 없지 않다. 일본은 경제 대국인 것은 맞지만 모범국가라고 하기에는 일말의 부족함이 있다. 중국은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투명성을 높이고 대외 이미지를 고양하기 위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한때 선진국임을 자랑하던 유럽의 많은 나라가 거울 속의 자신들을 보면서 스스로 시스템에 대해 다시 살피고 있다. 진정한 복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한 세기 전 풍미하였던 고서적을 다시 꺼내 드는 노인들도 있다.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Der Untergang des Abendlandes)을 쓰면서 문화와 문명의 주인공도 바뀌게 마련임을 역설하였다.
선진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한국은 오늘도 잡고 내일도 잡을 것이다. 대한민국에 마음을 뺏긴 팬덤(fandom)이 유럽에도, 미국에도, 아시아에도 넘치고 있다. 새로운 희망은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것이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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