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챈들러의 추리소설 ‘기나긴 이별’을 보면 “스스로 만든 함정만큼 치명적인 함정은 없다”는 대목이 나온다. 지난 4·15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의 궤멸이 딱 그 꼴이다. 원래 선거에서 지면 모든 욕과 비난을 뒤집어쓰게 된다. 그럼에도 지지자들은 일말의 동정과 아쉬움을 갖기 마련이다. 지금 미래통합당의 자중지란과 황당함은 그런 동정마저도 아까울 뿐이다. 중도층의 “안 찍기 잘했다”는 말이 실감난다. 토붕와해(土崩瓦解 : 흙더미가 무너지고 기왓장이 부서지다)가 됐는데도 통합당을 찍은 유권자들 가슴에 또 대못을 박고 있다.
앞으로 무소불위의 거대 여당을 견제하기는커녕 제 한 몸도 추스르지 못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미래통합당에 대한 기대는 이제 접는 게 옳다. 그들은 서울 강남과 경상도 지역 정당의 굴레를 넘어서기 어렵다. 코로나 탓할 게 아니다. 시대정신을 못 읽고 변화의 물결을 거스른 대가다. 입만 열면 ‘보수’와 ‘정권 심판’을 외쳐온 그들은 대안도 내놓지 못했고 보수가 지켜야 할 자유와 인권과 개혁마저도 외면했다. 한 마디로 ‘가짜 보수’다. 미래통합당의 옹졸한 틀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어느 정당이건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은 그 후유증과 진통을 겪게 마련이다. 미래통합당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은 보수의 정체성을 상실했고 당을 이끌 기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을 지지했던 국민 41%의 의사는 갈 길을 모르고 미래통합당의 현실에 절망을 느낀다. 당의 기수가 없으면 다음번 대선도 보나마나다. 새로운 당의 기수를 지금의 통합당이 만들 수 있을까? 불가능이 정답이다.
뻔한 얘기지만 보수는 자기 개혁과 함께 외연을 확장해야 살 수 있다. 과거 이념의 잣대로는 유권자를 끌어들일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사안에 따라 진영을 넘나든다. 어떤 사안에서는 보수적이고, 어떤 사안에서는 진보적이다. 보수의 기반을 넓힐 여지가 있는데도 통합당은 스스로 판 함정에 빠져 변화와 혁신의 노력을 하지 않으니 기대난망이고 소멸은 시간문제다. 게다가 집권 의지는 제로다.
1949년 중국 대륙에서는 마오쩌둥의 공산당이 이긴 게 아니라 장제스의 부패하고 무능한 국민당이 스스로 무너졌다. 이번 총선과 똑같다. 하늘이 내린 재앙은 피할 수 있지만 스스로 만든 재앙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 180석의 거대 권력을 손에 쥔 문 대통령의 독주만 남았다. 시원찮은 견제세력보단 한 번 알아서 제대로 해보라는 민심의 뜻이다. 통합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못난 당이 진 것이지 그들이 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문 정권을 견제했고 나라 빚을 걱정하고 코로나 영웅들에게 적극 공감한 사람들이다.
이제 ‘가짜 보수’의 득표 한계가 확인되고 세대교체 공감대는 넓어졌으니 ‘진짜 보수’의 가능성도 열렸다. 하지만 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최근 김종인 비대위를 둘러싼 통합당의 추한 모습은 자기성찰은 커녕 파국의 낭떠러지로 스스로 떨어지는 정상배들과 다를 바 없다. 정치를 왜 하나. 탄핵 이후 3년, 세상은 바뀌었는데 그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멀리 보고 ‘젊은 보수’를 키워내는 일이 통합당 때문에 좌절될까 두렵기만 하다.
이인재 건국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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