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은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앞두고 ‘환경미화’라는 명분으로 부랑인을 잡아다 시설에 가두도록 했다. 당시 경찰이나 구청직원들이 역이나 길거리에서 주민등록증이 없거나 행색이 남루한 사람들을 잡아와 형제복지원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시설들로 넘기곤 했다. 1986년 형제복지원 입소자 현황을 보면, 전체 3천975명 중 84%가 국가기관에 의해 보내진 것이라 하니 가히 충격적이다.
이때 단속의 근거가 된 것이 바로 1975년 박정희 정권이 발표한 ‘내무부 훈령 410호’로, ‘부랑인에 대해 신고, 단속, 수용, 보호하고 귀향조치 및 사후관리하여 도시생활의 명랑화를 기하고 범법자 등 불순분자 활동을 봉쇄하는데 만전을 기하’도록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박 전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위한 10월 유신을 단행하며,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초헌법적 조치를 담은 긴급조치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내무부 훈령 제410호가 발령된 시기 역시 이른바 ‘긴급조치’로 대변되는 암울한 현대사의 한복판이었다.
내무부 훈령 410호는 영장 없이도 부랑인들을 단속하고 시설에 수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부랑인을 ‘건전한 사회 및 도시질서를 저해하는 자’, ‘사회에 나쁜 영향을 주는 자’로 정의하였으나,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 누구라도 부랑인으로 지목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가족과 함께 사는 사람들조차 길에서 배회한다는 등 갖가지 이유로 부랑인으로 취급하여 영장 없이 잡아들여 시설에 강제수용하기도 하였다.
최근 논란이 되는 ‘한국판 아우슈비츠 수용소’ 형제복지원 사건, 선감학원 사건 등 모두 국가가 부랑인 단속과정 전체를 조직 지휘하고 단속 현장에는 경찰과 공무원이 투입됐으며, 시설에서 이루어지는 처참한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침묵한 전대미문의 국가 주도 인권유린이었다. 어쩌면 이런 사건들이 군부독재 시절 철저히 은폐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은 국가에 그 원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히 지난달 20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그동안 미해결 과제로 남아 있던 형제복지원 사건, 선감학원 사건 등에 진상 규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막판 쟁점이었던 ‘정부가 피해자에 대한 배상 방안을 의무적으로 강구해야 한다는 조항’이 정부의 재정부담으로 인해 배제된 것이다. 국가폭력의 피해자들에게 가해자인 국가가 적극적인 피해배상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지난 과오를 책임지지 않는 것과 같다는 점에서, 이는 심히 유감이다. 향후 21대 국회에서 이를 보완해주기를 기대한다.
역사는 늘 진실의 편이 승리한다. 이제라도 그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고인이 된 피해자들과 그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시절 국가폭력에 가담했던 공직자들에게 양심선언을 기대해보며, 대한민국 공무원들이 취임 시 반드시 하는 선서문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친다. “나는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헌법과 법령을 준수하고, 국가를 수호하며,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이승기 대표변호사(법률사무소 리엘파트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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