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중생에게 아픔이 남아 있는 한, 제 아픔은 계속될 것입니다.” 문병을 온 문수보살에게 유마거사는 답했다. 충격적이었다. 광대한 뭔가를 느낄 수 있었다. 대중 포교에 힘쓰는 대승불교의 지향을 십분 수긍할 수 있었다. 자신의 구제에만 힘쓰는 소승불교는 왜소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세상을 구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에 의해 얼마나 세상이 소란스러워졌던가. 조용히 자신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세상을 평안하게 하는 덕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유마거사의 말에서 받은 강렬한 인상은 퇴색되진 않았다. 그 인상이 다시 불현듯 떠오른 것은 최근의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세상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주었다. 노래가사 “We Are the World”를 이처럼 실감하게 하는 경우가 또 있을까. 그런데 하나가 된 세상을 바이러스만 누비지 않는다. 문화 양식, 아이디어 같은 것도 연결된 세상을 누빈다.
오래전 일본의 ‘이지메’가 매스컴을 탔을 때 나는 생각했다. 이지메는 지극히 일본적인 것이라 우리와 상관없다. 내가 지낸 학창시절에는 오히려 약자인 친구를 챙겨주지 않았던가. 이지메는 일본의 집단주의 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일 뿐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은 이내 접어야 했다. 우리 사회에도 ‘왕따’가 문제 되었기 때문이다.
차별적 인종주의와 침략적 민족주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흑백 갈등과 무관하고 우리는 약소국 연대의 저항적 민족주의이기에, 둘 다 우리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새 우리 주위에 그 ‘아류’가 가끔 모습을 드러내어 놀라게 했다. 다른 아시아인을 무시하거나 외국인 노동자를 혐오하는 사람을 보지 않는가.
왕따나 아류 인종주의는 강자에 굴종하고 약자와 소수자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태도다. 이런 태도는 전염성이 있다. 그 폐해는 바이러스 못지않다. 그런 행위의 결과가 바로 부메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유로 한 중국인에 대한 비난이 유럽과 호주 등지에서의 한국인에 대한 공격으로 나타났다.
세계시민의 삶은 연결되어 있다. 우한 시민의 건강도, 홍콩 시민의 안녕도,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건강하지 않은데 내가 안녕할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이 자유롭지 않은데 내가 안녕할 수 없다. 세상 사람들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김태희 실학박물관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