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수도 프레토리아에서 한 소년이 성장하고 있었다. 한 손엔 책을 들고, 한 손으론 컴퓨터를 만지던 일론 머스크는 10대가 되면서 자주 우주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종차별의 상징인 조국을 떠나 기회와 도전의 나라에서 꿈을 펼치고 싶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무자비한 폭력이 포효할 때 그는 캐나다를 경유해 미국 땅에 발을 디뎠다.
코로나 팬데믹의 광풍이 미 전역을 뒤덮고 있는 와중에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수도 워싱턴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로 확산되고 있다. LA 등 시위가 격렬해지는 일부 도시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재미 동포들이 약탈과 방화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트럼프 현 대통령은 물론 클린턴, 오바마 등 전직 대통령까지 나서서 인종차별 문제를 놓고 격돌하고 있다.
광활한 미국 땅에서는 갖가지 갈등요인들이 끊임없이 분출한다. 소수인종에 대한 횡포에서부터 이민 이슈, 빈부격차 문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난제들이 오늘도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국내에서 불평이 적지 않은 미국 국민이지만 그들에게는 특별한 자긍심이 있다. 바로 해외로 나갈 때 지참하는 미국의 여권이다. 20세기 이후 가장 대단하게 여겨지는 신분증명서이다. 흑인이든 히스패닉이든 미국 여권을 손에 든 여행자는 어느 나라에서건 자부심이 충만한 얼굴이다. 민간 우주시대를 열기 위해 지난 5월 30일 플로리다에서 발사된 ‘크루 드래곤’ 호에는 성조기 표식이 선명했다. ‘스페이스 X’ 기업을 만들어 인류의 새로운 꿈을 찾고 있는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미국 여권을 들고 있다. 지금 그는 청소년 시절의 꿈을 미국 땅에서 마음껏 펼치고 있다. 여전히 가장 붐비는 공항은 이주행렬이 줄지어 서있는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공항들이다. 복잡다단함 속에서도 가볍게 폄훼할 수 없는 위대함이 존재하는 나라이다.
어느 국민이든 자기 나라에 대한 불만이 있다. 북유럽에 가도 예외는 아니다. 위대함의 벽돌을 쌓아가는 대한민국 안에서도 문제점은 산재해 보인다. 양극화가 금방 보이고, 청년실업과 부동산 문제도 심각하다.
다시 위대한 나라로 만들려는 미국의 지도자가 한국에 손짓한다. 가장 배타적인 서방선진국 모임에 초청장을 보내온 것이다. G7이 어떤 식으로 재편되든, 대한민국이 승자의 대열에 올라서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파란의 20세기를 거치며 최고의 역경지수를 가슴에 새긴 한국민들은 이제 자랑스런 여권을 들고 미국으로, 유럽으로 여행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국제질서에 역할을 할 준비가 된 한국은 주변국들의 여하한 텃세와 견제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강인하고 지혜롭다.
자부심으로 채색된 대한민국의 여권을 손에 든 국민은 어두운 과거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지정학의 열세를 지경학의 우세로 전환하면서 새로운 외교적 지평을 열어갈 것이다. 15세기 스페인보다 더 해외개척적이며, 16세기 이탈리아보다 더 예술감각적이며, 17세기 선도국 네덜란드보다 더 상업적인 나라가 지금의 한국이다. 18세기 프랑스인보다 진취적이며, 19세기 영국인과 러시아인보다 더욱 의욕적인 국민이 현재의 한국인이다. 20세기 도전적인 미국인들처럼 창의와 혁신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금세기에 매력적인 역사를 쓰고 있는 바로 우리들이다.
최승현 경기도 국제관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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