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는 극적이고 역동적이었던 한국사의 시대적ㆍ지리적 무대였던 지역이자, 지금까지도 남북관계에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 접경지역인 동시에 DMZ를 품은 생태의 보고(寶庫)이다. 또한 파주삼현(율곡 이이, 우계 성혼, 구봉 송익필), 조선최초의 임진강 거북선 기록(조선왕조실록, 태종13)에서부터 현재 국내 최대 규모의 출판도시에 이르기까지, 과거와 현재의 기억과 기록이 공존하는 기록의 고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속담 있다. 파주는 급속한 도시화로 유ㆍ무형 자산이 빠르게 소실되는 과정 중에 놓여있고, 보편적 역사에 가려진 평범한 시민의 삶과 기억이 개인의 세월과 함께 사라져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있었다. 하여 2018년 시장 취임과 동시에 중앙도서관으로 하여금 파주시 기록사업의 지휘본부 역할을 부여하고, 전국 최초로 도서관에 기록관리팀을 신설하였으며, 경기도 최초로 민간기록물 조례를 제정하는 등 사라져가는 파주시의 기억들을 기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파주시 기록사업의 가장 큰 특징은 도서관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 있다. 도서관은 시민들 사이의 관계가 자연스레 형성될 수 있는 일상의 공간인 만큼, 시민의 기록 활용에 있어 매우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중앙도서관은 매년 아카이브 강좌를 통해 시민들에게 기록의 중요성을 알리고, 기록에 관심 있는 시민들을 모아 시민채록단 ‘휴먼in파주’를 꾸려, 급격한 도시화와 세월에 휩쓸려 소멸될 위기에 있던 파주사람들의 소중한 삶과 기억을 시민들과 함께 기록해왔다.
그렇게 파주에서 40년 이상 살아온 열 분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아낸 단행본 <파주에 살다, 기억하다>가 세상의 빛을 보았다. 전쟁으로 얼룩지고 갈라진 땅에서 생존해내기 위해 삶과의 전쟁을 치러내야 했던 세월, 그 속에서 함께했던 이웃·가족들과의 희로애락에 대한 기억으로 밀도 높게 구성된 이 책은 지난해 ‘전국매니페스토 경진대회’에서 수상하면서 큰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현재도 중앙도서관은 다양한 상징성을 기록하는 주제별 기록화사업을 진행하는 중에 있다. 격동의 근대사를 겪은 파주의 분단과 냉전의 유산을 평화와 희망의 유산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DMZ 국외자료 수집, 전쟁으로 사라진 도시의 기억을 되짚어가는 장단마을 기록화사업, 대성동 자유의 마을 이야기 수집, 그리고 최근 20년간 가장 큰 변화를 겪은 교하·운정 신도시 기록화사업 등, 매년 파주의 상징적 기억들을 발굴해내어 이를 중점적으로 기록해오고 있다.
파주시는 기록물 수집 과정에 있어 시민과 소통하고 시민을 성장시키는 방향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시민기록네트워크, 시민채록단, 기록물관리위원회, 리비교 시민기록 추진단 등을 꾸림으로서, 시민이 기록의 대상이 아니라 기록의 주체로 참여하도록 이끌어 기록사업의 지속성을 확보해 가고 있다.
한편, 수집된 기록들은 지난해 개관한 디지털기록관에서 전시 및 기록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최근 방송, 언론, 연구자 활용과 타 지자체 벤치마킹이 늘면서 시민들의 칭찬과 격려가 이어지고 있다. ‘기록’이 시민들에게 옛 추억을 되살리고 세대 간 교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옛 기록을 수집하는 것만이 가치 있는 일은 아니다.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재의 흔적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 소중한 기록이 된다. 향후 파주시는 도서관(Library), 기록관(Archives), 박물관(Museum)의 기능을 공유하는 복합문화기관 라키비움(Larchiveum) 건립을 통해 보다 진취적으로 기록문화를 선도 할 계획이며, 이는 현재 시민들의 삶과 공동체들이 주체적으로 기록하도록 지원하고 생산된 모든 기록을 담아내는 풀뿌리 기록화의 그릇으로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올해부터 6월9일 ‘기록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지정했다. 이는 바야흐로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기록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각 지방자치단체들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지역의 사라져가는 기억들을 기록하고 소중히 간직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최종환 파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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